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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지금, 여기] 초록을 숨 쉬다…정식 개원 앞둔 서울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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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엎친 데 덮치는 봄, 도심에서 잠시라도 마음껏 숨 쉴 곳이 필요하다.

또다시 최악의 미세먼지가 세상을 뒤덮은 3월 초, 서울 마곡동 서울식물원으로 피신했다. 미세먼지에 한강 다리조차 구분되지 않는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도착한 식물원에서 온실 가득한 초록을 마주하자마자 두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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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물원 온실의 열대관 [사진/전수영 기자]



강서구 마곡 도시개발지구에 50만4천㎡ 규모로 들어선 서울식물원은 지난해 10월 임시 개방한 이후 두 달 만에 100만명이 찾았고, 3월에 200만명을 돌파했다.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겨울, 열대와 지중해의 이국적 식물이 가득한 식물원의 온실은 서울 시민의 오아시스였던 셈. 5월 초 정식 개원을 앞두고 식물원을 둘러봤다.

◇ 온실에서 만나는 이국의 식물

직경 100m의 그릇형 온실은 열대 기후와 지중해 기후에 속하는 12개 도시의 정원을 테마로 꾸며졌다. 열대관과 지중해관은 각각 기후에 맞는 온도와 습도 제어를 위해 유리 벽으로 분리했고, 열대관에서는 키가 높이 자라는 열대 식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스카이워크도 설치했다.

그냥 휙 둘러보면 30분도 족할 테지만, 어느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국의 꽃과 나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생김새를 들여다보려면 몇 날도 부족할 듯싶다. 현재 온실 안에 있는 식물종은 약 500종, 앞으로 800종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열대관에 들어서면 인조 동굴에 매달린 박쥐난과 틸란드시아, 국내에서 가장 큰 벵갈고무나무가 먼저 맞는다. 구아바, 망고, 코코넛 야자, 카카오, 파파야, 망고스틴 등 열대 과실수 중에 열매를 맺은 것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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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관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연못 [사진/전수영 기자]



커피 열매가 이미 맺혔는데, 산책로 가까이 열렸던 건 누군가 따가고(그러지 맙시다) 없고, 잎 뒤에 숨은 걸 간신히 하나 찾았다.

야자나무만 해도 가장 높이 자라는 대왕 야자부터, 피닉스 야자, 카나리아 야자, 대추야자, 주병 야자, 워싱턴야자, 여우꼬리 야자, 미라구아마 야자, 야자처럼 안 생긴 공작 야자, 줄기가 붉은 립스틱 야자, 해를 향해 뿌리를 옮겨 내리며 걸어 다니는 야자까지 다양하다.

석가모니가 도를 깨달았다는 인도 보리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온실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캐넌볼 트리는 가격이 1억원에 육박한다. 커다란 열매가 녹슨 대포알처럼 생겼다고 캐넌볼(cannonball)이란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 처음 들여오는 수종이라 검역소의 모니터링만 6개월에 걸쳐 이뤄졌다. 남아메리카 원산으로 35m까지 자라는데, 스카이워크에서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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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넌볼트리 [사진/전수영 기자]



지중해관에는 선인장 무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영화에 상징처럼 등장하는 변경주선인장과 용의 혀를 닮았다는 멕시코산 무늬용설란 사이에 멕시코 반사막지대가 원산인 덕구리란도 있다.

변경주선인장은 보통 150년 이상 사는데 75년 정도 자라야 줄기에 팔이 자라기 시작한다. 덕구리란은 건조한 기후에서 버티려고 줄기 밑부분에 물을 저장하기 때문에 술병 모양으로 비대해져 있다. 그래서 코끼리발 나무라고도 한다.

식물체 전체에 가시가 있고 염증을 일으키는 별 모양의 솜털이 있는 '악마의 솜', 아래를 향해 피는 나팔처럼 생긴 꽃이 아름답지만 독성이 있는 '천사의 나팔' 같은 위험한 것도, 열매가 미키 마우스를 닮은 '오크나 키키'처럼 귀여운 것도 있다.

국내에서 흔히 자라는 꽃들이 색채를 더하는 가운데, 개량하지 않아 작고 여린 노란 튤립 원종에 마음을 빼앗겼다.

온실은 정식 개원을 앞두고 막바지 시설 보완·개선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3월에는 열대관 관람이 통제됐고, 4월에는 지중해관 관람이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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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주선인장 [사진/전수영 기자]



◇ 일상이 되고, 문화가 되는 식물

'식물, 일상이 되다', '식물, 문화가 되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일상적으로, 문화와 함께 식물을 즐길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도 많다.

온실이 있는 식물문화센터 1층에 자리한 카페마저도 널찍한 테이블 가운데서 식물이 자라고, 한쪽에서는 구근 식물 화분과 씨앗을 판매하고 있어 식물원 전체 분위기와 위화감 없이 어울렸다.

씨앗도서관에서는 토종 씨앗과 말린 식물을 실물과 그림, 사진 등으로 전시하고 씨앗을 '대출'해 주기도 한다. 잘 재배해 수확한 씨앗을 반납하면 되지만 의무는 아니다. 시민들에게 씨앗을 기증받기도 한다. 식물원이 추천하는 키우기 쉬운 실내공기 정화 식물은 아이비, 스킨답서스, 떡갈잎고무나무, 아레카야자, 부채 파초다.

2층에서는 기획전 '서울식물원 탄생기록'이 4월 14일까지 진행되는 한편, 강의실에서는 식물 그리기 등 수업이 열린다.

식물전문도서관은 국내·외 식물 서적 8천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앞으로 1만5천권까지 늘려나갈 계획이다. 역사, 문학 등 다른 코너도 있는데, 모두 식물과 관련이 있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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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도서관에 전시된 토종 씨앗들 [사진/전수영 기자]



바깥으로 나와 어린이정원을 지나면 마곡문화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근대산업유산으로, 건물이 온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배수펌프장(등록문화재 제363호)이다.

이 일대는 지표가 낮고 한강 하류에 있어 홍수가 잦았기에 4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 그 위에 목조 건물을 올렸다. 1980년대까지 김포평야의 물을 퍼내던 배수펌프장은 보강과 보수 작업을 거쳐 전시관으로 새로 태어났다. 현재는 마곡동 땅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곡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온실이 있는 식물문화센터와 한국 자생 식물을 중심으로 꾸민 여덟 가지 주제 정원을 포함하는 주제원은 임시 개방 기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지만 5월 정식 개원과 함께 유료화될 예정이다.

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 마곡나루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열린 숲에는 방문자센터가 자리 잡았고 광장과 잔디마당, 숲 문화원이 이어진다.

숲 문화학교에서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2020년에는 LG아트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한강과 식물원이 만나는 지점의 습지원은 한강 전망 데크와 저류지의 생태 학습장이 있고, 산책로와 물가 쉼터가 있는 호수원과 이어진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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