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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종교도 불편함에 질문을" 낙태까지 껴안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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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피플] 낙태죄 폐지 운동 참여한 자캐오 신부…헌법 불합치 결정에 "함께 이야기하는 기회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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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자캐오(민김종훈) 신부를 성공회 용산 나눔의집에서 인터뷰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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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기까지 앞장서 온 많은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종교가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대할지 고민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자캐오(민김종훈) 성공회 용산 나눔의집 원장 사제(45)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캐오 신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종교계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해 온 흔치 않은 인물이다.

자캐오 신부의 이력은 꽤 독특하다. 한국 교회의 주류인 장로교에서 시작해 순복음교회를 거쳐 2003년 성공회 신자, 2012년 사제가 됐다.

지금은 용산 나눔의집과 길 찾는 교회에서 미등록 이주민과 난민, 성소수자 등 차별받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 활동을 한다. 기독교라는 큰 틀 안에서 극과 극을 오간 셈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용산 나눔의집 한 켠에는 성소수자의 상징인 6색 무지개 깃발과 십자가가 나란히 자리했다.

굴곡이 심한 자캐오 신부의 행보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 큰 영향을 받았다. 자캐오 신부는 초등학생 때부터 어머니, 남동생 둘과 함께 살았다. 40년 가까이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만 살아온 그는 평생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낙인과 함께했다.

자캐오 신부는 "이성애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정상가족 담론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소수자로 낙인찍혀본 경험을 통해 다른 소수자의 아픔을 공명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민김종훈이라는 그의 이름도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2000년부터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에 동참한 그는 직접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순서대로 붙여 이름을 새로 만들었다.

자캐오 신부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 이름을 부르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과정"이라며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도 '정말 그럴까?' 하는 질문을 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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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자캐오(민김종훈) 신부를 성공회 용산 나눔의집에서 인터뷰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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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본격적으로 낙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5년, 미등록 이주민들을 만나게 되면서다.

자캐오 신부는 "사회적 약자인 미등록 이주민 여성이 임신을 하면 그중에서도 약자가 되는 것"이라며 "안전하게 낳을 권리뿐 아니라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에서도 배제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낙태는 여성 문제일 뿐 아니라 이주민 문제이면서 성소수자 문제이기도 했다.

낙태를 포함한 소수자 문제로 문호를 넓혀가면서 매주 일요일 소외받던 이들이 용산 나눔의 집으로 모였다. 2014년부터 공식적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그는 올해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성공회 교회들'이라는 이름을 걸고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캐오 신부는 인터뷰를 마치며 마태오의 복음서 한 구절을 소개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동안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아온 자캐오 신부의 삶을 표현하는 문구다.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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