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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내일부터 ‘낙태’는 합법?"...“법 개정 전까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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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 판결 후 달라지는 것들...Q & A

헌법재판소는 11일 낙태죄를 처벌하는 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법률을 당장 무효화하면 사회적 혼란이 크기 때문에 법률을 개정할 시간을 주겠다고 밝혔다. 당장 내일부터 낙태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약 2년 동안 69차례에 걸쳐 낙태수술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가 "낙태죄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을 낸 사건이다. 심판 대상 조항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자기낙태죄(형법 269조)’와 임산부의 촉탁을 받아 낙태수술을 한 의사와 한의사, 약제사 등을 처벌하는 '의사낙태죄(형법 270조)’였다.

이에 대해 헌재는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 중 의사와 관련된 부분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현재는 "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신체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헌재의 이날 결정으로 앞으로 낙태죄 처벌은 어떻게 이뤄질지, 기존에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 등 쟁점이 될 부분들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조선일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와 의사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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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낙태한 여성이나 낙태수술을 해준 의사가 처벌받지 않는건가
"이날 헌재가 내린 결정은 ‘헌법 불합치’ 결정이다. 현재의 위헌 결정에는 헌법 불합치와 단순 위헌, 한정 위헌 등 세가지로 구분된다. 단순 위헌 결정은 결정 순간부터 그 법률의 효력이 상실되는 것이다. 헌법 불합치와 한정위헌은 위헌 결정의 변형된 형태인데, 헌법불합치는 위헌이지만 제도의 공백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기한을 주고 입법기관에 법 개정을 촉구하는 결정이고, 한정 위헌은 법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해석에 따라 위헌일 수 있기 때문에 법률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석해주는 결정을 말한다.

이날 심판 사건에서도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은 헌법 불합치, 3명은 단순 위헌, 2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이날 결정은 ‘낙태죄 처벌조항은 위헌이지만 사회적 후폭풍을 고려해 내년 12월31일 내 법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이 법은 유효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내일부터 낙태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법 개정 이후엔 낙태를 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건가.
"이번 헌재의 결정은 모든 낙태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현행법상 낙태죄 처벌 대상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현실에 맞게 제도를 정비하라는 취지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날 헌법 불일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약 22주 이내이면서 적어도 임산부가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출산·육아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등 충분히 숙고할 수 있는 시간 이상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임신초기에 낙태를 제한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낙태는 기존보다 허용되는 범위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범위는 입법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낙태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처벌받지 않는 것인가.
"헌재는 이날 주문에서 ‘형법 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에 대해 1항 가운데 의사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의사낙태죄’라고 불리는 이 법 조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나머지 한의사와 조산사, 약제사, 약종상에 대해서는 낙태수술 처벌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헌재는 "자기낙태죄(형법 269조) 조항이 위헌이므로,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로 위헌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 법 조항 역시 법 개정을 통해 낙태수술을 할 수 있는 직종이나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져야 할 부분이다."

-현재 낙태죄로 수사받고 있거나, 재판 중인 사람은 어떻게 되나.
"당분간 검찰 수사와 기소는 보류되고, 하급심 법원은 최대한 선고를 미루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판단이나 국회의 법 개정 상황을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하급심에서 유·무죄 판단이 갈릴 가능성도 있다. 2009년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야간 옥외집회 금지’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재가 헌법불합치를 결정했을 때 하급심에서 각기 다른 판결을 쏟아내는 바람에 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법이 개정되기 전이기 때문에 기존 법률대로 판결한 경우와 헌재의 판단을 고려해서 판결한 경우가 뒤섞인 것이다."

-이미 낙태죄로 처벌받은 전과자들은 어떻게 되나.
"헌법재판소법은 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이 선언될 경우 과거 처벌까지 소급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해당 조항에 대해 헌재의 마지막 합헌 결정이 났던 2012년 이후 형이 확정된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고,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 구금됐던 사람의 경우 형사보상금도 받을 수 있다.

다만 헌재 결정 취지대로 개정된 법률에서 무죄에 해당돼야 한다. 예를 들어 임신 초기 여성의 경우만 낙태를 허용하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면, 이 부분에 해당돼 처벌받은 사람만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무더기 재심 청구 등으로 큰 혼란이 빚어지는 것은 아닌가.
"낙태죄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가 많지 않아 이번 판결로 재심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2~2018년 사이 1심에서 낙태 사건으로 징역형이 내려진 경우는 4건, 벌금형이 내려진 경우는 10건이다. 현재 상고심(대법원)에 계류 중인 낙태죄 사건은 단 한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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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판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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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관련 법은 언제, 어떻게 바뀌나.
"헌재는 이날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를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법률 개정 전에 시한이 만료되면 낙태죄 관련 법률의 효력은 사라진다.

새롭게 정비해야 할 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낙태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모자보건법은 유전학적 장애, 질환이 있거나 강간에 의한 임신일 때 아이를 가진 지 24주 이내의 낙태만 허용하고 있다.

법을 재정비 할 때는 해외 사례를 참조할 가능성이 크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제개발 협력기구(OECD) 36개국 중 경제·사회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한 국가는 30개국이다. 아직 불허 국가인 아일랜드는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죄 규정 폐지가 결정됐고, 임신 12주 이내 수술은 제한을 두지 않는 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프랑스와 독일, 덴마크 등도 임신 12주까지 임산부의 요청이 있으면 의사 상담 이후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불법 낙태를 한 경우 남성도 법적 책임을 지게 되가.
"앞으로 국회에서 법 개정을 할 때 이 부분도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기존 낙태죄 조항은 낙태를 한 여성과 수술을 집도한 의사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예외규정에는 낙태 수술을 할 때 성관계를 맺은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임신과 낙태에 대해 남성은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어 부조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법 개정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남성의 책임과 의무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법으로 허용된 낙태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될까.
"법적으로 허용되는 모든 낙태에 대해 의료보험이 적용되는지 여부는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기존 제도에서 장애, 질환 등 건강·보건상의 이유로 이뤄진 합법적인 낙태는 의료보험 지원이 됐다. 임신 8주 8만원부터 20주 21만원 등 임신 기간에 따라 의료수가가 지급됐다.

그러나 앞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새롭게 합법의 영역에 포함되는 사회·경제적 낙태까지 지원이 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원하는 낙태를 못하면 임부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보험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질병이 아닌데도 단순히 원치 않은 임신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보다 앞서 낙태를 전향적으로 허용한 프랑스는 임신 12주 내라면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기존에는 낙태 비용의 80%까지 의료보험으로 환불해줬지만 2013년부터는 전액 지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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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앞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찬성측과 반대측 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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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허용 범위가 넓어지면, 낙태가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것 아닐까.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주장이다. 미국은 1973년 낙태를 합법화했는데, 당시 16.3%이던 낙태율은 1980년 29.3%까지 높아졌다가 2014년 14.6%로 합법화 전보다 더 떨어졌다.

이를 두고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측에선 ‘낙태를 숙고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잘 갖춰졌는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고 한다. 미국은 제도적 지원 등이 마련되기까지 40여년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낙태가 합법화되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많다. 반면 낙태죄 폐지 찬성론자들은 ‘합법화되며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낙태가 통계로 잡히기 때문에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낙태율은 15.8%로 추정된다. 반면 낙태가 허용된 미국과 독일의 낙태율은 2015년 기준 각각 11.8%, 7.2%로 우리나라보다 낮은 것으로 나온다. 반대로 우리보다 낙태를 더 엄격하게 금지하는 칠레는 2005년 기준 0.5%, 비슷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폴란드는 2012년 기준 0.1%였다. 낙태죄 유무죄가 낙태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늘어날 낙태수술에 대비해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낙태 전 상담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는 상담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낙태 전 1주일의 숙려기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상담을 통해 임부는 심사숙고할 기회를 갖고, 이는 태아생명 보호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날 헌재도 ‘낙태를 예외없이 제한하면 임신의 유지 여부와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게 된다’며 ‘안전한 낙태를 위해 잘 훈련된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 낙태에 대한 교육이나 상담이 활성화 돼 낙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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