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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취재일기] 한유총 해산한다고 유아교육 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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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민희 교육팀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법인 설립허가 취소를 통보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유총 사무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김철 한유총 정책홍보국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유아교육을 위해 헌신한 대가가 이거냐. 강제 해산은 국가 권력의 횡포”라는 반발도 나왔다. 지난달 개학 연기 투쟁은 준법 투쟁이었기에 허가 취소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한유총은 24일 설립허가 취소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 설립 허가 취소를 발표하면서 “학부모 불안감을 해소하고 유아교육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허가 취소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유총이 공익을 해치고, 목적 외 사업을 통해 정관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개학 연기 투쟁으로 학부모들에게 혼란과 불편함 초래하고, 이전에도 유아와 학부모를 볼모로 집단행위 한 게 공익을 해쳤다는 내용이다.

행정소송에서 이기지 않는 이상 한유총은 법인 청산 절차 밟을 수밖에 없다. 개학을 연기하면서 유아와 학부모들을 볼모로 삼은 강경투쟁 방식이 한유총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다. 정부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법적 지위까지 잃은 한유총이 이전과 같은 집단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라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사립유치원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갈등 불거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법인을 해산시켜도 단체 활동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법외노조 상태에서도 연가투쟁 등을 했다. 사립유치원들이 제2, 제3의 한유총을 설립할 가능성도 있다.

사립유치원들은 ‘사유재산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치원을 설립할 때 30억원 가까운 사유재산을 투자했으니, 시설사용료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의 하나로 국공립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사립유치원이 제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원아 비율이 75%로 국공립(25%)의 3배 수준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 중에는 긴 돌봄 시간과 통학 차량 운행 등을 이유로 사립유치원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정부는 사립유치원의 위법행위와 비리를 밝히는 한편,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사립유치원 내에 유아교육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교육자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불거진 후 그들의 대화 요구조차 거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금처럼 사립유치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만 해선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아·학부모가 짊어져야 한다. 사립유치원도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 지원을 요구할 때는 교육자였다가, 감사받을 때는 자영업자로 돌변하는 이중적인 태도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전민희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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