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9 (목)

자립과 돌봄 사이, 탈시설과 커뮤니티 케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동철(부산복지개발원장)

[편집자 주] '포용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중 하나다. 이에 발맞춰 올해부터 아동수당, 돌봄교실이 큰 폭으로 확대되며 '사회 복지'가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복지는 삶의 질 향상과 직간접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므로, 우리나라의 현 사회복지가 어떤 상황인지 객관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우리 사회복지의 실태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여론 형성을 통해 정책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칼럼을 연재한다.

노컷뉴스

발달장애인 통합유치원,특수학교 확대 (그래픽=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구 사회복지의 역사는 구빈원으로 대표되는 시설보호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6·25 전쟁 이후 부모와 삶터를 잃어버린 아동들을 위한 시설보호서비스가 한국 사회복지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 시설은 절실했고 뜻있는 독지가와 외원기관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게 시설은 시작되었다.

시설에 많은 장애인들이 몰려 들어가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단체의 규율과 이에 따른 감시와 처벌의 수단들이 발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비등했고 시설 유지에 따른 막대한 비용도 부담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탈시설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 시설을 소규모화하는 동시에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정책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어떤 상황이 탈시설인지, 민간 시설의 재산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 준비되지 않은 지역사회에 내던져진 장애인들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지 등 많은 난제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4년을 넘게 진행된 장애계의 광화문 농성에 대한 화답으로 문재인정부가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국정과제로 채택했고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인, 노인, 아동 등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커뮤니티 케어'를 정부 정책의 핵심축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서구와 마찬가지로 이를 풀어가는 해법은 단순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노컷뉴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 탈시설, 탈시설화 그리고 커뮤니티 케어

탈시설은 말 그대로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의 일반 주택이나 지원 주택 등에서 생활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탈시설화는 시설화되는 사회문화적 경향을 차단하는 것에 주요한 목표가 있다.

여기서 시설화란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장기간 생활함에 따라 생기는 심리적, 신체적 변조(身體的變調)로 시설적 문화에 의해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길들여지고, 무기력해지며, 사회생활을 통해 이뤄지는 인간발달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퇴행해가는 과정과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탈시설화란 '시설의 전형적 물리적 구조와 서비스 방식의 변화를 넘어 인간심리와 사회적 발달 및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는 진취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시설의 폐쇄나 시설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시설화의 제도적 문화적 경향을 광범위하게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역사회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고 그 중심적 개념으로 자리잡은 것이 커뮤니티 케어이다. 커뮤니티 케어는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가정 또는 그와 유사한 지역사회 환경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돌봄의 형태이다. 단적으로 커뮤니티 케어는 가정과 유사한 지역사회 환경에서 상주하는 직원 없이 거주자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돌봄이 제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자립과 돌봄의 충돌과 화해

자립생활과 탈시설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돌봄이 가지는 의존성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시설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시설에서의 돌봄 행위는 불가피하며, 탈시설화가 진전된 서구에서도 그룹홈 형식의 돌봄 양식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서로 상충된 입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돌봄의 윤리 입장에서는 돌봄행위는 인간존재에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것으로서 자립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돌봄의 윤리 패러다임은 인간의 삶 전체에서 돌봄을 주고 받는 활동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정상적이라는 데에서 시작된다.

또한 인간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가정하는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기 이전에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이들은 사적 돌봄이 사회화되고 조직화된 '사회적 돌봄(social care)'을 복지국가의 변화와 발전을 포착하기 위한 중심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Dale and Lewis, 2000; Williams, 2001).

이들은 인간의존이라는 불가피한 사실의 보편성을 암묵적으로 부정하고 돌봄을 주고 받는 관계, 즉 돌봄관계의 당사자들을 사회적으로 주변화하고 돌봄의 가치를 평가절하 해온 기존의 사회정책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다(마경희, 2010: 323).

그렇다면 이러한 입장 차이는 화해될 수 없는 것인가? 돌봄의 보편성을 인정하면 자립에 대한 의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충돌을 피해가는 논리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이 누스바움(Nussbaum)이다.

누스바움은 인간 생애 전 과정에 걸친 타인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 인간존재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점을 전제하지만, 실제 사회가 의존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돌봄이 사회 부정의의 원천이 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정의로운 사회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돌봄을 받을 수 있고,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착취되지 않는 사회, 모든 사람들이 타인과의 평등 속에서 좋은 삶의 기회를 제공받고 인간 그 자체로서 존중받는 사회이다(Nussbaum, 2002).

또한 그는 공적 돌봄의 규범적 기초를 '시민들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capability)'을 보장하는 데에서 찾는다. 그는 동일한 수준의 재화가 동일한 기능을 실현하도록 하지 않기 때문에 역량은 개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개인들이 놓인 조건의 차이를 고려하여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정책이 시민에게 그러한 역량을 보장하려면 개별적으로 필요한 역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물질적,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시민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하고,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노컷뉴스

(그래픽=연합뉴스)


◇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시설에서 나와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따른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지역사회 일반 주택에 거주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지원을 받아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기존시설에서 나오는 것 이외에도 시설 입소를 예방하고 시설중심 제도와 문화를 바꾸어가는 것도 탈시설화의 중요한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탈시설 지원을 하고 있으나 자립정착금, 주거지원, 활동지원 추가지원, 탈시설 지원체계 등에서 매우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탈시설 정책 추진을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며, 동시에 정부와 민간기관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개인별 탈시설 지원계획 수립, 주거지원, 탈시설 초기 서비스 집중지원 제도를 획기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노컷뉴스

유동철 부산복지개발원장


동시에 탈시설 장애인들의 사회적 돌봄을 위해 개인별 욕구에 따라 의료지원·요리지원·돈 관리·주택관리·직업지원·문화생활지원·교육지원·긴급도움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원을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탈시설 준비·전환·정착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탈시설지원센터가 필요하다. 중앙과 광역시도에 탈시설지원센터를 설치하고 탈시설 준비과정에서는 초기상담 및 정보제공, 탈시설 욕구 확인 및 탈시설 여건평가, 거주의사확인 및 시설서비스 평가, 탈시설 전환유형 심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탈시설 전환과정에서는 상담 및 정보제공, 체험주택 활용지원, 주거이전 준비, 개인별 탈시설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정착과정에서는 주거이전 지원, 정착서비스, 개인별탈시설지원계획 이행, 사후관리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지원주택·임대주택 등 주거지원, 부양의무자 기준 우선 폐지, 탈시설 정착금 제도화 및 현실화, 활동보조인 제도 개선, 신규입소 예방 및 기존시설 개입 등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얼마 전 제주시와 대구 남구가 장애인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선도사업지로 선정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는 탈시설의 맥락을 충분히 반영한 전략을 마련하여야 한다. 지난 4월 12일부터 시작된 장애계의 서울시청 앞 농성은 탈시설의 엄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이에 대해 우리 모두가 적절한 화답을 해야 할 것이다.

글 싣는 순서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릴레이 칼럼
① 절망적 아동복지예산
② 포용국가와 사회복지
③ 사회복지사 임금과 전문성
④ 장애인의 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⑤ 노동절 특집, 인권 문제 단상
⑥ 노인 빈곤율과 저출산 문제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