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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2년만에 돌아온 국립발레단…'잠자는 숲속의 미녀'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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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4일 개막한 국립발레단 제178회 정기공연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올 한해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지젤’ 등 대작을 모두 무대에 올려 우리나라 최고 발레단으로서 우월한 기량을 아낌없이 선보이겠다고 선언한 국립발레단이 24일 첫 작품으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서울 서초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했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차이코프스키 3대 발레로 꼽히는 이 작품은 ‘오로라 공주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의 심술로 공주가 18세 생일 파티에 죽을 위기에 처하자 요정이 궁전 전체를 100년간 잠들게 한 후 데지레 왕자가 키스로 공주와 모두를 구하게 한다’는 프랑스 동화를 발레로 만든 명작이다. 총 3막의 클래식 발레 전범(典範)이자 발레팬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인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선악의 끝없는 대결과 개성만점인 ‘신 스틸러’들, 그리고 ‘로즈 아다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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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우리곁에 영원히 존재한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19세기 말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리우스 프티파 안무로 초연된 후 여러 안무가에 의해 새롭게 탄생했다. 국립발레단이 이번에 무대에 올린 건 ‘마르시아 하이데’판. 1987년 당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예술감독이었던 마르시아 하이데가 새롭게 해석한 작품인데 이전까지 ‘루돌프 누레예프’판을 무대에 올렸던 국립발레단은 2016년 처음으로 하이데판을 무대에 올렸다.

“다른 버전의 작품에 비하여 마녀 카라보스의 역할에 중점을 두어 극에 입체감을 불어넣고 극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했다. 특히 사악한 마녀 카라보스역을 남성 무용수가 맡아 더욱 역동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극을 이끌어 간다”는게 국립발레단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식 개막 전날인 23일 진행된 시연에선 왕자·공주보다 선의 화신 라일락 요정과 악역을 맡은 마녀 카라보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애초 공연 중 상당시간을 잠들어있어야 하는 오로라 공주는 여느 동화에 나오는 공주보다 수동적 역할에 머물러 매력이나 인기가 덜한 편이다. 데지레 왕자도 후반부에야 등장하는데 존재감이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신 공연 초반부터 3막이 끝난 후까지 무대를 지배하는 건 검은 베일과 장막을 휘두르며 무대를 종횡무진인 카라보스다. 시연에선 신장 195㎝로 국내 최장신 발레리노인 이재우 수석무용수가 맡았다. 2017년 공연때 이미 데지레 왕자와 카라보스 역을 번갈아 맡은 바 있는 이재우는 카리스마를 마음껏 발산하며 관객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라보스로부터 오로라 공주를 보호하는 라일락 요정의 활약도 대비된다. 시연에선 솔리스트인 한나래가 맡았는데 카라보스에 압도되지 않고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난제로 손꼽히는 1막의 베리에이션도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카라보스와 라일락 요정은 극중 오로라 공주 세례식과 18세 생일파티, 그리고 오로라 공주가 잠에서 깰 때 맞선다. 총 3차례인데 선과 악의 대결로 주목해볼 장면이다. 하이데의 해석은 “영원한 해피엔딩은 없다. 악은 우리 곁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늘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인데 둘의 대결도 사생결단은 아니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조응(照應)하듯 선·악 역시 어느 한쪽이 상대를 멸하거나 완전히 뗄 수 없으며 공존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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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만점 신스틸러들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발레팬에게 종합선물세트인 이유는 다양한 캐릭터에 고루 돌아가는 무대 때문이다. 우선 1막에선 우아의 요정, 건강의 요정, 관용의 요정, 웅변의 요정, 용기의 요정이 각기 다른 춤과 연기로 시선을 잡아끈다. 고전 발레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히는 3막 결혼식에선 동화 주인공이 총출동한다. 플로린 공주와 파랑새, 장화신은 고양이와 레이디캣, 빨간 모자와 늑대, 알리바바와 네 보석들, 개구리 왕자와 공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이다. 이들이 돌아가며 선보이는 디베르티스망이 3막을 가득 채운다. 특히 솔리스트 김명규가 맡은 알리바바와 네 보석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또 늑대와 개구리 왕자 등 동화 속 캐릭터들은 알록달록한 복장에 대형 탈까지 뒤집어쓴 채 자신의 순서가 아닐 땐 무대 한쪽을 지키는데 이들의 깨알 연기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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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라 공주의 로즈 아다지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3막 그랑파드되가 꼽힌다. 특히 오로라 공주가 데지레 왕자에게 몸을 맡긴 채 두 다리를 하늘로 높이 뻗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러나 발레팬이 가장 기대하는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하이라이트는 1막에서 폴란드,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왕자로부터 청혼받은 오로라 공주가 선보이는 로즈 아다지오다. 4명의 왕자와 한번씩 손을 번갈아 잡으며 오로라 공주가 애티튜드를 한 상태로 총 4바퀴를 돈다. 한 발을 뒤쪽으로 올리고,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다른 한쪽 발끝으로 서는 애티튜드는 발레 기본 자세이나 초심자에겐 단 1초도 뒷다리를 들어 올린 채 평정을 유지하며 버티기 힘든 자세다. 이 때문에 로즈 아다지오는 여러 발레에서도 가장 어려운 장면으로 꼽힌다. 오로라 공주가 여러 왕자의 손을 어떻게 잡았다 놓는지부터가 관찰대상이다. 시연에선 올 상반기를 마지막으로 국립발레단을 떠나는 수석무용수 김지영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로즈 아다지오를 보여줬다. 음악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지영의 춤은 이날도 발레 전문 지휘자 제임스 터글이 이끄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에 딱딱 맞아 떨어졌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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