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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중형 조선소, 정부 조선업 보완대책 실망…"2000억 보증으론 일감 못 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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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 지원 보완대책은 소형 업체에 집중된 것이다. 중형 조선소들은 여전히 대형 업체와 소형 업체 사이에서 소외되고 있다."(중형 조선소 관계자)

정부가 지난 23일 내놓은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 보완대책에 중형 조선소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책은 RG(선수금환급보증) 지원금을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확대하고, 기자재업체 제작금융 보증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할 경우 은행이 선주사에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는 지급 보증이다.

RG 발급이 안 되면 선박 수주 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형 조선소들은 RG 규모가 확대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한척당 400억~500억원에 달하는 중형선을 수주해야하는 입장에서 턱없이 모자란 액수라고 지적한다.

조선비즈

경남 통영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 조선소(왼쪽)와 진해에 위치한 STX조선해양 조선소(오른쪽)의 야드와 독이 텅텅 비어 있다./조선비즈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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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중형 탱커가 3650만달러(약 417억원), 중소형 컨테이너선은 3500만달러(약 400억원)에 발주됐다. 이를 기준으로 한척당 필요한 RG는 200억원 수준이다. 2000억원 한도에서는 10척 밖에 수주하지 못하는 셈이다. A 중형 조선소 관계자는 "작은 여객선이나 화물선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충분한 액수일지 모르지만, 중형선을 기준으로 하면 일감을 채우기 어려운 금액이다"고 말했다.

정미경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수주절벽으로 RG 발급 최저점을 기록한 2016년에도 중형 조선 RG 발급액이 6000억원, 중소형 조선의 경우 823억원에 달했다"며 "25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의 예산에 포함시켜 약 5조원 규모의 RG 발급이 가능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소형 조선소에 초점을 맞춘 것은 구조적인 이유가 한몫한다. A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대형 선박 발주는 해외 선사들에 기댈 수 밖에 없다"며 "정부가 적극 개입할 수 있는 국내 선박 교체 수요는 모두 예인선, 여객선, 화물선과 같은 소형배 뿐이다"고 말했다.

중형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RG 발급 기준 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주채권단인 국책은행 같은 금융기관들은 수주 적정성 평가를 통해 RG 발급을 지원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선박 기술력이나 수주 실적보다는 재무상황을 먼저 따지기 때문에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B중형 조선소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경우에는 조선소라는 얘기만 듣고도 꺼리는 분위기다"며 "은행에 잔고가 많아져도, 인출 진입장벽이 높아 돈을 받지 못하는 꼴"이라고 했다.

RG 발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주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다. STX조선은 지난해 그리스에서 선박 7척을 수주했다가 산업은행의 RG를 받지 못해 일감이 취소됐고, 지난해 9월 가까스로 탱커 2척의 RG가 발급되면서 단기 유동성 위기를 넘겼다.

정부가 내놓은 보완대책에서 제작금융 지원을 기자재 업체에만 한정한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조선소의 수주 계약은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금융권에서 빌려 쓰고 나중에 대금을 받아가는 ‘헤비테일’ 방식이 보편적이다. 현금이 부족한 업체들은 제작기간을 버틸 돈이 없어 수주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박 건조기간을 버틸 수 있게 제작금융 지원을 조선소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업계의 의견에 대해 "지원받길 희망하는 조선사는 대부분 중·소형 조선사로서 현장의 RG 수요가 약 2000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정부는 금융기관이 적극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고의 및 중과실이 없는 경우 담당자 면책 등을 통해 독려할 계획이다"고 했다.

한동희 기자(dwi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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