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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혼탁한 네온사인 광고…눈을 가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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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에서 눈과 뺨, 이마를 제거해 이미지의 우상화를 비판한 작품 `페이머스 컷` 연작 옆에서 작품처럼 눈을 감고 포즈를 취한 작가 하비에르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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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케이트 모스, 나오미 캠벨, 배우 소피아 로렌…. 어두컴컴한 전시장에 들어서자 형형색색 네온사인이 이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고층 빌딩 대형 광고판과 TV 등에서 과감한 누드로 대중을 사로잡아 온 스타들이다. 그들의 몸은 어느 순간 광고 제품과 함께 상품으로 소비돼 왔다. 스페인 출신 작가 하비에르 마틴(34)은 이들의 광고 사진을 인쇄한 후 흑백 계열 물감을 칠해 화려한 배경을 삭제했다. 그 위에 네온사인을 설치해 가린 '눈'은 현대 소비 사회가 빚어낸 '맹목'을 상징한다. 여성 외모와 성적인 매력을 도구 삼아 소비자들을 매혹시켜 온 산업을 비판하기 위해 네온사인을 선택했다. 화려한 빛으로 대중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블라인드니스 컬렉션(Blindness Collection)'을 펼쳐온 작가는 "흔히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한다. 사람의 가장 강력한 표현 도구인 눈을 가리는 기법을 통해 외모와 물질 등 피상적 요소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 단면을 비판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내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미술관에 펼친 다른 작품 '블라인드니스 위안' '페이머스 컷' 연작 역시 눈을 가리거나 삭제했다. '블라인드니스 위안'에 등장하는 모델들 드레스는 중국과 홍콩 화폐로 장식했다. '페이머스 컷' 시리즈는 앤디 워홀, 피카소, 마릴린 먼로 등 유명 인사들 초상화에서 코와 입을 남겨두고 눈과 뺨, 이마를 제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외적 이미지를 우상화하고 소비하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작업이다. 2016년 아트바젤홍콩에서 주목받은 '라이즈 앤드 라이트 퍼포먼스 영상'도 도발적이다. 작가가 직접 강한 빛을 내뿜는 긴 형광등을 차례로 깨부순다. 사회 여러 장벽을 깨부수는 것을 상징한다고. 자유와 진실을 향한 예술 투쟁을 통해 자기 길을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위험해 보인다고 하자 그는 "사전에 안전장치를 해놨다. 어차피 우리 삶이 모두 위험하니까 위험을 안고 작업했다"고 답했다.

2015년에는 부산 레지던시 작가로 머물면서 아트부산과 화랑미술제에 작품을 출품해 국내에도 알려졌다. SM엔터테인먼트 러브콜을 받아 그룹 동방신기와 샤이니 멤버들 사진에 네온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실험적인 작품으로 뜬 그는 8세이던 1994년 스페인 세우타 시립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을 정도로 일찍 재능을 표출했다. 동네 미술 클라스에서 가족이나 강아지를 그리는 또래들과 달리 감정을 표출한 추상화를 그려 단숨에 주목 받았다. 예술고나 미대를 가지 않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 기성 화단에 휘둘리지 않고 독창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그는 "미술 외에 다른 과목도 홈스쿨링으로 배웠다. 관습적인 교육 과정을 거부하고, 내가 직접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길을 통해 예술적 감각을 키워 나갔다"고 했다. 현재 미국 마이애미 스튜디오에서 주로 작업하지만 스페인, 미국, 홍콩 등 세계 각지에서 작업을 한다.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시각을 확장시킬 수 좋다고. 전시는 7월 28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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