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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데 노동법?…담배보다 더 해로운 게 밤샘노동” MBC 김민식PD 1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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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보다 더 건강에 해로운 게 밤샘 노동이다. 드라마 제작 스텝들이 일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정말 열악하다. 법 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지금 그 법이 지켜지지 않은 건 관행 때문이라고 본다.”

열악한 방송제작환경 문제를 제기하다가 세상을 등진 고 이한빛 PD 사건과 관련해 CJ ENM의 재발방지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6일엔 현직 지상파 드라마 PD로는 처음으로 김민식 MBC PD가 1인 시위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방송제작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PD는 MBC드라마 <뉴논스톱>, <내조의여왕> 등의 연출을 맡았다. 2012년엔 MBC파업, 2017년엔 공영방송 총파업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PD의 유지를 잇기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 10일 이 PD의 동생이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인 이한솔씨의 1인 시위부터 시작해 보름 넘게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서울 상암동 CJ ENM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김 PD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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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현직 지상파 드라마 PD로는 처음으로 김민식 MBC PD가 서울 상암동 CJ ENM 본사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 PD는 CJ ENM 측이 약속한 드라마 방송제작 환경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어보였다. /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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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은 자리다. 처음엔 솔직하게 나는 못간다고 얘기했다. 거론되고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동료 PD들이고 작가님들도 제가 아는 사람들이 관련돼 있다. 1인 시위를 하는 게 그분들의 일에 대해 내가 비난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는 점에서 동료로서 못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영화 <생일>을 봤는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몇 년간 겪은 힘든 일이 나왔다. 유가족도 대단하지만 ‘돕겠다’고 옆에서 연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더라. 가족 만으로는 그 상처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영화를 보면서 그분들한테 고맙더라. 언론노조에서 보낸 1인 시위 취지나 설명하는 자료를 다시 봤는데 그 이한빛 PD 동생(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의 이름을 봤다. 그리고 마음이 바뀌더라. 형의 유지를 받들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내가 동료들을 배려해 (1인 시위를) 거절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하겠다고 했다.”

-동료 PD들에게도 얘기하고 나왔나.

“아니다. 일부러 안 했다. 다만 오늘 이걸 하면서 이런 시위가 특정 작품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전반적인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말하는, 특히 연출들이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대목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다고 보나?

“제가 1996년에 입사했을 때에는 편집실에서 선배들이 담배피우는 게 당연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밤샘 편집을 하는데 선배가 담배를 피우면 저는 참 힘들었다. 그런데 드라마PD는 예술가니까 여기서 담배피우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법이 바뀌니까 이제는 아무도 편집실에서 담배를 안피우더라. 실내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한 뒤로…. 물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징계를 먹이고 하니까 바뀌더라. 저는 담배보다 더 건강에 해로운 게 밤샘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PD와 작가는 ‘우리가 하는 일은 예술인데, 이게 노동법에 저촉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하긴 한다. 저는 법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법이 정하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 어려운 얘기라고 생각한다. 지난해에 복귀하고 나서 <이별이 떠났다>는 드라마를 하면서 스텝회의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관련 법 예고가 6월이었고 시행 전이었다. 내가 스텝회의에서 ‘우리 현장 만큼은 68시간에 맞췄으면 좋겠다. 그게 어려우면 촬영 끝나고 8시간 휴식 만큼은 지키자’고 했다. 그랬더니 곧바로 제작와와 담당 CP에게서 연락이 왔다. ‘감독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좋은데 스태프회의에서 발표하면 어떻게 하냐. 그냥 하다가 못지키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해야지’라고 하더라. 사실 8시간 휴식하면 제작사가 부담이다. 제작비는 똑같은데 촬영 일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내 말이 지상파 방송사 PD가 제작사에 갑질을 하는 걸 수도 있다거나 제작비는 같은데 촬영 일수가 늘어나면 제작사에 부담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내 나름의 양심을 지키는 게 제작사에서는 갑질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때 이 문제가 정말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왜 바뀌어야 하나?

“현장에서 약자들이 굉장히 고생한다. 보조분들이다. 스타감독이나 배우·작가들이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밑으로 잘 안 간다. 참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런 얘기를 했다가 제가 스타 배우나 작가에게 찍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이 잠도 못자고 일하는 건 아니지 않나. 배우나 감독이나 잠을 잔다. 그런데 라인맨·붐맨 이런 스텝들이 일하는 시스템은 정말 열악해서 바꿔줘야 한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을 배려하면 된다. 그러니까 법이라도 지키자라는 것이다.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에 ‘편집실 금연’ 얘기 나왔을 때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결국 법대로 하니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금 지켜지지 않은 건 관행 때문이라고 본다.”

앞서 한빛센터는 2017년 6월 CJ ENM과 재발 방지 대책을 합의하고 외부 제작 스태프의 적절한 근로시간과 보상 원칙에 합의했지만 6개월 후 tvN 드라마 <화유기>에서 스태프 추락사고가 발생하면서 양측 협상도 중단됐다.

한빛센터는 “CJ ENM이 편성, 제작하는 드라마 스태프로부터 끊임없는 제보를 받고 있다”며 “<나의 아저씨>, <아는 와이프> 등 화제성 높은 드라마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한빛센터는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과 면담을 진행, 1일 최대 근무 시간 14시간, 1주 68시간 근로시간 준수, 턴키계약 없애고 개별 계약 진행, 스태프 협의회 운영 등을 약속하는 제작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엔 tvN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다수 스태프가 주 10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제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빛센터는 “무리한 야간 촬영 강행으로 스태프의 팔이 부러지는 사고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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