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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외촌동 사람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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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신림동 이주민 삶 묘사한 작품 / 노작가, 수안보서 하늘 꿈 꾸시는듯

수안보라는 이름, 참 특이하다. 나는 충주로 버스를 타고 가 수안보 온천 ‘타운’까지 운전을 하기로 한다. 호음실, 살미 같은 땅이름이 나온다. 20분 가면 될 길을 잘못 들어 40∼50분 걸리니 박태순 선생께서 사람 기다리기에 지치셨을 법도 하다.

밖에 나와 계시겠다는 것을, 내가 거의 다 도착해서야 전화를 드려 마침 나오시는 선생과 딱 마주쳤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선생은 안으로 들어오라 하시며 안에 먹을 것 많다고 같이 들자 하신다. 나는 극구 사양하며 선생의 좁디좁은 집안을 쓱 둘러본다. 한눈에, 아하, ‘속손뼉’을 친다. 이건 꼭 손창섭 선생 말년에 거주하던 도쿄 인근 히가시쿠루메의 아파트다. 좁다. 간단한 취사시설과 책장에 책뿐이다. 그래도 책상 위엔 컴퓨터 화면이 크다. 외부로 열린 넓은 창문이다. 책장에 꽂힌 책들, ‘한국인의 살림집’, ‘격동의 한국사회’, ‘세계문화사’, ‘지장보살경’ 그 밖에 일본어책, 영어책, 그리고 선생이 쓰신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2,3권이 각기 두 권씩 꽂혀 있다. 그중 한 권을 선생은 직접 사인해 주신다.

세계일보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나는 집안에서 먹고 이야기하자는 선생을 끌어내다시피 해 바깥으로 나온다. 선생은 월악산, 잘 생겼지. ‘월’은 원래 여자 모습이요, ‘악’은 남자 모습인데, ‘월악’이니 여자 아름다움에 남자다운 기상까지 함께 갖춘 산이지라고 하신다. 선생은 한 걸음이 어려우신 모양새다. 걸음 어려워진 지 10년 넘었다는 선생 모시고 나는 시속 5∼6㎞ 속도로 나아간다. 조심스럽다. 계단 내려와 몇 걸음 사이에 가빠진 숨소리가 안타깝기만 하다.

수안보가 어디고 월악산이 어딘지, 나는 이쪽 충북 내륙으로 걸음 해 본 적이 없다. 이곳 봄 빛깔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연둣빛 산에 복숭아꽃이 요염하게 피어났다. 산의 벚꽃도 아직 이곳은 한창이다. 후삼국 시대에 경주 세력이 무력해지고 왕건 세력과 견훤 세력이 여기 하늘재, 곧 계립령에서 붙었단다. ‘삼국유사’에 이 계립령 뚫은 역사가 나온다니, 유서 깊은 계곡이다.

선생은 우리가 지금 태백산맥, 소백산맥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말에 ‘고토 분지로’라는 일본 지질학자가 잘못 붙인 거고, 땅 밑에 맥만 아니라 땅 위 맥도 봐야 하니까 신경준의 ‘산경표’에 나오는 백두대간, 그리고 정맥이 맞는다며, 여기 하늘재는 이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이어주는 실크로드나 같다고 하신다.

하늘재다, 지릅재다 해서 오래된 이름이 여전히 여기에선 살아 있다. 나는 선생을 따라 ‘미륵사 원터’에, ‘미륵리 불두’를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산길을 돌고 돌아 송계계곡의 수려한 풍광 속으로 들어간다. ‘외촌동’ 연작의, 그 외촌동은 어디인지 여쭈어보니, 선생은 지금의 서울 신림동으로 그때 무허가 철거촌 사람들을 거기로 이주시켰지라고 하신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신림동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었다. 새삼스럽다. 거기 ‘외촌동’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그렇게 어려운 중에도 생기가 넘쳤다. 선생은 사람들의 활기를 즐겨 그렸다. 흑인문학, 그중에서도 ‘랭스턴 휴즈’를 좋아했다는 선생이다. 지금 선생도 이렇게 몸이 힘드신데 목소리 단정하고 허리 꼿꼿하기 그지없다. 키가 178㎝, 마른 대나무 한 그루다.

식당 몇 곳을 그냥 지나쳐 마침내 들른 곳은 ‘월송’이라는 옛날부터의 단골 식당, 선생은 거기서 두부찌개를 시켜 나를 먹이셨다. 정작 당신은 ‘정말’ 한 숟가락도 뜨지 않으셨다. 나는 거기 특산이라는 ‘고본주’를 됫병으로 한 병 시켜 들고 선생과 함께 돌아 나온다.

이제 내가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작가요 작품이 된 박태순 선생과 ‘외촌동’ 연작. 선생은 그 외촌동에서 또 바깥으로 떠나 이 월악산 수안보에서 하늘 꿈을 꾸고 계신 듯하다. 혼자서 외롭지 않으냐는 물음에 선생은 ‘나 혼자서가 좋다’라고 하신다. 나도 나 혼자서가 좋다. 그러나 생래적인 ‘외촌동’ 사람은 되지 못한다. 선생을 ‘타운’에 되돌려드리고 나오는데 복숭아꽃이 너무도 아름다워 서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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