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한국 대학 위기…학문 단위 융합하고 교육방식 혁신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6일 한국조직학회 세미나서

김재훈 제이앤컴퍼니 대표 발표

대학교수들 “기획 역량 부족” 등

발전 저해요인 등 의견 나눠

정부 과도한 규제에 대한 비판도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엠아이티(MIT)는 1조원을 투자해 인공지능(AI) 단과대학을 올해 9월 설립할 예정이고요. 인공지능을 미래의 언어라고 보고 전 계열 학생들에게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고 합니다. 인도 공대는 매년 창업가 400명 배출을 목표로 학생들에게 실무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대학들은 바뀌고 있는데, 한국 대학은 어떻습니까? 2030년이면 4년제 사립대학 50%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우리 대학들은 학문 단위, 커리큘럼, 교육방식의 혁신 노력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대학의 자율적 발전이 더딘 상황이고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한성대 에듀센터의 한 세미나실에서는 30여명의 교수가 모여 대학전문컨설팅사인 제이앤컴퍼니(J&Company) 김재훈 대표의 발표를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한국조직학회와 한국행정개혁학회가 공동개최한 이 날 세미나 주제는 ‘위기의 한국 대학, 그 해법은?’이었다. 학령인구 감소, 인공지능 발달 등 대학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데, 한국 대학은 시대적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끼는 교수들이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과 정부가 각각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모색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김 대표는 중앙대 미래전략실장을 역임하고, 대학전문컨설팅사를 창업해 여러 대학을 컨설팅 한 경험이 있다. 김 대표는 한국 대학이 놓인 위기의 요인을 크게 환경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눠 설명했다. 환경적 요인으로는 △학령인구 감소 △높은 등록금 의존도 및 취약한 재정 자립도 △정부 규제 △대학을 대체하는 교육 서비스의 등장을 꼽았다. 내부적 요인으로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직된 학사구조 △학생의 전공선택권 부재로 인한 전공-경력 불일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맞는 학습방식의 적용 미흡 △대학 경영의 혁신성 및 전문성 결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주요 대학들이 어떻게 미래 사회에 대비해 변화하고 있는지 소개했다. 김 대표는 “세계 대학들은 융합형 인재양성을 위해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고 프로젝트 기반 학습, 현장 중심 학습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뉴욕대의 경우 문리대학에 입학하면 1~2학년엔 전공을 탐색한 뒤 학생이 인문, 사회과학, 예술, 자연과학, 공학 분야의 66개 전공 가운데 자신의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학생의 전공선택권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또 지난 2012년 세계 최초 줄기세포 분야 노벨상을 받은 교토대 아이피에스(IPS)세포 연구소는 제약회사는 물론 다른 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공동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기초 연구는 교토대에서 하지만, 췌장 이식의 경우는 도쿄대, 심장혈관은 오사카대, 간부전은 요코하마시립대 등이 하는 식으로 융복합 연구를 해 성과를 낸다. 김 대표는 “국내 의과학 대학들은 연구비의 90%를 정부에 의존하지만, 총괄 정책부서가 없고 장기가 아닌 단기 연구가 대다수라 연구 성과가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닥쳐올 위기들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대학 스스로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20년 전 커리큘럼을 그대로 운영하는 대학은 더는 경쟁력이 없으니, 학문 단위를 융합하고 교육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학교와 기업 간 공동연구를 더 활발하게 진행해 첨단 기술 상용화를 촉진해야 하고, 재정이나 국제화, 경영 분야에서 전문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그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정원 및 학과 개편에 대한 정부의 통제 △온라인 수업 제한 △해외캠퍼스 신설 규제 △외국인 교수 채용 제한 △등록금 규제 등을 꼽았다.

김 대표의 발표가 끝난 뒤 토론에 참석한 교수들은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이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먼저 김보경 서울시립대 교육학 박사는 대학 내 기획 능력이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김 박사는 “많은 대학이 세계적 대학 트렌드를 공부하고 정부 정책 변화나 우수 사례 등을 분석하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기획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기획 능력과 함께 학교 안에서 공감을 끌어내고 집합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노력이 있어야 그나마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획처장 경험이 있는 교수들은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대학 내부 환경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강원대에서 기획처장 경험이 있는 홍형득 강원대 교수는 “교육과정을 개편하려면 최소 4년 뒤에 적용되고, 어떤 과를 폐쇄하려면 9~10년은 걸린다”며 “그런데도 대학들은 교육부 장관이 바뀌면 계획을 다시 세우고, 총장이 바뀌면 또 계획을 새로 세운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행”이라며 “진정한 성과는 오랜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가 정책을 유도하기 위해 재정사업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지나친 경우가 있다”며 “대학도 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대학기획처장협의회 전 부회장을 역임한 박명호 동국대 정치행정학부 교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특성화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하소연했다. 박 교수는 “특성화를 하려면 불균등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대학 내부의) 합의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은 3000개 대학 중 박사 학위 주는 곳이 300개 대학밖에 안 되는데, 우리는 95% 대학이 박사 학위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학생이 팽창하던 시대에는 문제가 안 됐지만 지금은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대학의 미래 발전 전략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수원 원장을 맡은 백정하 원장은 “많은 대학이 특성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대학이 가진 역량 중에 우수한 것 중심으로 특성화를 하는데, 그것보다 ‘20년 뒤에 뭐가 필요한가’를 고려해 지금은 역량이 약한 것에 투자해서 특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1등 대학’이 아니라 ‘유일한 대학’이 만들어져야 생존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 원장은 또 대학이 발전하려면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2000년 이후 태어난 대학 입학생들은 완전히 종이 달라, 그 학생들에게 맞는 교수법을 알아야 한다”며 “정부가 강사 및 교수들이 교육방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정부가 기본적인 원칙과 방향만 제시해주면 대학들은 그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방법을 찾을 것”이라며 “세계 대학 몇 위라고 순위만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외국의 우수 사례를 발굴해 대학들에 공유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송석휘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대학 발전을 이야기할 때 기계적, 산업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하며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 성장의 장소’로서의 대학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대학에 대해서 의미가 없다고 하는지, 또 앞으로 미래 시대에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만 학교 특성과 교육과정의 차별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국가교육위원회 구성 등에 있어서도 교육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려면 그런 고민을 하고 어젠다 세팅을 할 다른 시각을 가진 분들이 국가교육위 등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은 현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대학의 다양성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송 교수는 “엠아이티가 인공지능대학을 만든다고 하니 우리가 인공지능대학을 똑같이 만들면 발전할 수 없다”며 “발전 모델이나 문제 해결 방법이 획일적이어선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한 대학이 모든 것을 하는 시기는 지났다”며 “한국 대학의 다양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교육 무용론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지만, 인재양성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 교수는 “산업체나 사회가 인재를 공동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의식이 없다”며 “대학운영방식과 대학의 문제해결력을 높이려면 이론, 실제 조화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대학만 인재양성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가 함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창화 한국조직학회 회장은 “한국 대학이 존폐의 위기에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으나, 근본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공론화한 논의와 변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한국조직학회가 대학에 대한 객관적 진단과 함께 고등교육 정책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체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