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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금방 떠날 사람인데"…무기력했던 외부출신 교육장관 5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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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개혁 가로막는 교피아 ⑥ ◆

매일경제

대입을 비롯해 우리나라 입시 정책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서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사진은 26일 밤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은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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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9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현장에서는 취임이 확정되지도 않은 후보자 임기를 놓고 여야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교육부 장관 자리가 '총선 경력 관리용'에 그칠 것이란 의구심 때문이었다. 당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20년 4월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야당 측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유 장관은 "장관직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총선이란 기회가 (내게) 주어질지도 의문"이라고 돌려 말했다. 급기야 여당에서도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1년짜리 장관이라는 지적을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며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고 총선에 출마하면 이거야말로 경력 관리용 장관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간이 흘러 교육부 수장이 된 지금도 유 장관은 총선 출마 의사를 간혹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단 한 번도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교육부 장관이 1년짜리 계약직이라는 인식이 고착화하면서 전·현직 교육부 관료들 사이에서 "새 장관이 오면 정책 방향이 바뀌는데 뭐하러 장기 플랜을 논하고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온다. 유 장관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면 그의 교육부 경력은 1948년 취임한 안호성 초대 문교부 장관 이후 지난해 10월 퇴임한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까지 57명의 역대 장관 재임 평균(450일·1.23년)과 비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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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재임기간이 짧을 뿐 아니라 역대 교육부 장관 중 교육관료 출신이 1명에 불과할 정도로 정책 연속성이 담보될 수 없는 구조도 문제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첫 장관인 이해찬 장관(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부터 유은혜 현 부총리까지 21명의 장관 중 교육관료 출신은 서남수 장관(2013년 3월~2014년 7월 재임)이 유일하다. 나머지 20명 중 16명이 대학 교수 출신이고 4명은 정치인 출신이다.

한 전직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입시나 대학 구조조정을 놓고 의욕 있는 관료들도 적지 않지만 장관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의욕을 상실한다"고 말했다. 교육장관 58명 중 57명의 외부 장관 상당수가 개혁을 시도했지만 잦은 장관 교체와 정책 급선회에 따른 '학습효과'로 교육부 늘공(행시나 7·9급 출신 교육관료) 상당수는 복지부동으로 일관했고 개혁은 번번이 좌초됐다. 교육부가 변죽 울리기식 대학 구조조정을 반복하면서 일부 퇴직 관료들이 부실 대학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장은 수시로 바뀌고 직업 교육 관료들은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권한도,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퇴로는 막아둔 채 미온적인 대학 정원 감축만 유도하고 있어 교피아를 발판 삼아 정부 재원이나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좀비 대학'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교육계는 "역대 정부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대학 구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어왔지만 정작 부실 대학 줄이기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당장 올해 대학 입시를 치르는 고3 수험생은 작년보다 6만420명 줄어든 51만241명이다. 반면 대학 입학정원(전문대 포함)은 55만3397명이어서 4만3000여 명이 미달될 위기다. 특히 대학 진학보다 취업에 중점을 둔 특성화고 졸업생을 제외하면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고3 수험생은 35만7000명 수준(최근 5년간 평균 대학 진학률 70% 기준)에 불과하다. 이 경우 대학 정원이 19만6000여 명 부족해진다. 연간 재수생이 10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더라도 대학 정원은 9만명 안팎이 남아도는 셈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의 '줄폐교' 현상이 향후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정작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 구성원인 학생들 몫이다. 정원 미달로 재정난이 심해지면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초 정부가 대학평가 결과에 따라 부실대학 문을 강제로 닫을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잔여 재산을 학교법인 설립자 등이 일부 회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한계대학 자진 퇴거 발판을 마련한 '대학구조 개혁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당정 합심 아래 야심 차게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처리가 무산됐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재정난에 처한 대학이 해산할 경우 잔여 재산을 모두 국고나 지자체에 귀속시키도록 규정함으로써 사립대학의 해산 퇴로를 사실상 막고 있다. 사립학교 법인의 해산 퇴로가 열린다면 경영능력이 없는 부실대학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 없이도 자연스레 사라지고 경쟁력을 갖춘 사학만이 남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열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특별취재팀 = 정석우 기자 / 원호섭 기자 / 고민서 기자 / 김유신 기자 / 윤지원 기자 ※제보=ed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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