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발굴한 6·25 실종자 유해, 유가족에 돌려주고파” [차 한잔 나누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장유량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신원확인센터장 / 2007년 국유단 발족 때 인연 맺어 / 올 3월까지 1만1550구 유해 발굴 / 신원 확인 132명… 거의 보관소 잠들어 / 유가족 DNA정보 수집 가장 절실 / “전문·일관성 가진 단일 기관 필요”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총을 옆에 낀 채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망중한이라도 즐겼던 걸까. 그를 노린 적군의 총탄이 그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고향의 어머니를 추억할 틈도 없이 그는 부지불식간에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2017년 여름, 경기도 연천군의 어느 바위에 등 기대고 앉아 쉬고 있던 한 군인의 백골이 사망 67년 만에 발견됐다. 그의 유해는 숨질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시신 위로 흙이 쌓이면서 유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서다.

당시 유해 발굴 현장을 찾은 장유량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신원확인센터장은 “유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다. 67년 동안 편히 쉬지도 못하고 앉은 자세로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유해를 감식하다보면 성장판이 채 닫히지도 않은 소년병 유해가 상당히 많다. 전쟁의 상처는 우리 발아래 곳곳에 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장유량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신원확인센터장이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유단 연구실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감식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사무실에서 만난 장 소장은 “6·25전쟁 유해 발굴과 감식, 봉환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라며 “‘죽기 전에 내 남편, 형제의 뼈라도 봐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는 유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을 항상 잊지 못한다. 발굴한 실종자 유해 모두를 꼭 유가족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장 센터장은 2007년 국유단이 발족할 때 법의학자 공고에 지원하면서 유해감식 업무와 인연을 맺었다. 과학수사학을 전공한 장 센터장은 “우연히 인터넷에 올라온 모집 공고를 봤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제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6·25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은 2000년부터 유해를 발굴해오고 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1만1550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중 1만203구가 국군 유해로 판명됐다. 6·25전쟁 실종자 13만3000여명 중 발굴한 유해는 10%도 미치지 못한다. 발굴한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인원은 132명으로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대다수 유해는 지금도 국유단 지하 보관소에 잠들어 있다.

“유가족의 DNA 정보 수집이 가장 필요합니다. 6·25전쟁이 갑자기 발발하다 보니 전사자 개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반면 미국은 모병제이기 때문에 개인 정보를 갖고 있어서 연간 200구 정도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장 센터장은 “국유단에서도 매년 현충일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DNA 시료를 채취하고 있지만 샘플 확보가 쉽지 않다”며 “유해발굴과 감식도 중요하지만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유가족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장 센터장은 지난해 남북 두 정상의 ‘4·27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비무장지대(DMZ) 남북 공동 유해발굴 사업에 대해 “이념과 국가를 떠나 인도주의 차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남북 공동 유해발굴 덕분에 지난해 10월 남측 DMZ에서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해를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드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6·25전쟁 전사자 유해 감식의 한우물만 파온 장 센터장은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와 민간인 학살 피해자, 대형 재난 희생자 등의 유해 발굴과 감식을 위해 전문성을 갖춘 기관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장 센터장은 “행정안전부, 국방부, 국가보훈처, 제주와 광주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민간 모두가 유해 발굴·감식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있다. 전문인력 확보가 어려운 지자체는 특히나 발굴·감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문성과 일관성을 가진 단일 기관이 있다면 (유해 봉환으로) 과거의 아픔을 해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 센터장은 이어 “미국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감식인력만 우리의 5배 규모인 120명 정도”라며 “충분한 인력과 의지만 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해 봉환은 인도주의 원칙이 우선입니다. 초국가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장 센터장은 중국 하이난과 태평양 키리바시공화국의 타라와섬 등지에서 발견된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에 대해 “유해 봉환은 인권과 인도주의 원칙이 기본에 깔린 가운데 전문 감식을 통해 정확한 신원을 밝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 최대한 많은 유해가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국민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