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자연과 선비 정신 간직한 '정읍'
전북 정읍시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전봉준 장군 동상. 김소희 기자 k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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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라는 애절한 노랫말이 울려 퍼진 곳. 동학농민혁명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한국에서 가을철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내장산이 있는 곳.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역사가 살아있는 전라북도 정읍시를 찾았다.
'반란', '역적'으로 몰렸던 선조들의 아픔을 기억하기 때문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손들은 본인이 동학의 후손이라고 밝히기를 꺼렸다고 한다. 2004년 5월 연건평 5361㎡ 규모의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이 세워진 배경에도 아픔이 있다. 전두환 시절에 황토재 일대를 성역화하면서 함께 지어진 기념관을 문화유산으로 남겨둔 대신 새롭게 기념관을 세웠기 때문이다.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에 불만이 팽배해 있던 농민 500여 명이 1894년 1월 10일 봉기했던 말목장터의 감나무는 2003년 태풍에 쓰러져 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정읍은 선비문화유적도 곳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사학기관 '무성서원', 호남제일정 '피향정', 조선 99칸 집 '김명관 고택' 등 국가지정문화재는 정읍이 선비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어린이들. 김소희 기자 k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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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초들의 항거' 동학농민혁명, 125주년 맞다
1894년 1월 10일 정읍 고부의 동학 접주 전봉준과 농민들은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세상을 향해 죽창을 높이 들고 일어났다. 수탈과 억압에 짓눌리던 농민들은 '사발통문'을 통해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의 처형과 고부성의 점령, 무기고 탈취, 탐관오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뜻을 모은다. 정읍 고부면 말목장터 감나무 아래는 반봉건 항쟁의 시발점이다.
고부민란으로부터 1년여에 걸쳐 전개된 동학농민운동은 공주 우금치 전투를 끝으로 미완의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외세의 국권침탈에 맞서 보국안민을 이루고자 했던 이들의 꿈은 계속됐다. 3·1 독립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에는 동학농민군의 정신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1층으로 옮겨진 말목장터 감나무. 김소희 k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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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기념관 1층 입구에는 혁명의 최초 발원지였던 말목장터에 있던 감나무가 우뚝 서 있다. 높이 14.5m, 수령 180년 된 이 나무는 2003년 여름 태풍으로 쓰러져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 나무는 고부 봉기 때 말목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배들평 농민들과 전봉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층 전면에는 '기억의 방'이 있다. 허리를 굽혀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이 방은 사방이 거울로 둘려 있다. 또 작은 전구들이 유리를 수놓고 있다. 이는 몇 명만 들어가도 사람이 꽉 차 보이는 효과를 낳는다. 유태길 문화해설사는 "전등 불빛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농민군의 영혼을 상징한다"며 "사람들의 모습은 당시의 수많은 백성이 염원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홍규 작가의 목판화 '후천개벽도'에 그려진 민중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김소희 기자 k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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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작가의 목판화 '후천개벽도'를 보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탐관오리의 죄목을 조사하여 하나하나 엄징할 것,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 노비 문서는 태울 것,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용할 것….' 등이 담긴 '폐정개혁 12개 조항' 때문이다. 이들은 집강소에서 내건 폐정개혁 12개 조항이 적힌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박 작가에게 전봉준 장군은 농민들의 어머니이고, 젖줄 같은 섬진강의 어머니이고, 이 땅 모든 백성의 어머니다.
지난 2004년 3월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0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 인가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출범했다. 이곳에서는 정읍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2월 20일 국무회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심의·의결됨에 따라 정읍의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이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로 제정·확정됐다. 이에 따라 11일 정읍에서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첫 기념식이 열린다.
김명관 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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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두꽃' 향기 머금은 김명관 고택
김명관 고택은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17세 때 짓기 시작해 10년 만인 1784년(정조 8년)에 건립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아흔아홉 칸 한옥이다. 전통한옥의 조형미를 그대로 간직한 고택은 창하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동남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다.
고택은 행랑채·사랑채·안행랑채·안채·별당으로 구성됐다. 바깥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만개한 진분홍빛 박태기나무 꽃이 관광객을 반긴다.
고택의 안마당은 ㄷ자집 형태로, 안채 내부 마당과 안행랑채 사이의 긴 가로마당이 만나는 모양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룬 균형미와 처마의 흐름, 기둥의 배열이 소박하면서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대청 좌우에는 큰방과 작은방을 두었으며 이들 방 남측에 각각 부엌을 배치해 큰방에는 시어머니, 작은방에는 며느리가 기거했다.
김명관 고택의 안마당은 ㄷ자집 형태의 안채 내부 마당과 안행랑채 사이의 긴 가로마당이 만나서 아늑함이 느껴진다. 김소희 기자 k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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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맡은 김기점 문화관광해설사는 "안채의 서남쪽에 있는 안사랑채는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일꾼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했다. 원래 아흔아홉 칸 집이었으나 현재는 여든여덟 칸만 남아있다. 문화재청과 정읍시가 함께 유지·관리하고 있다.
김 해설사는 "건축 과정에서 안채와 사랑채, 부엌의 구조를 보면 집안 여자들은 물론 머슴들까지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며 "고택이 큰 변란기를 겪으면서도 잘 보존된 것은 고택 주인들이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초 문화재 지정명칭은 '정읍 김동수씨 가옥'이었으나, 2017년 2월 28일 '정읍 김명관 고택'으로 문화재 지정명칭이 변경됐다. 소박한 구조로 되어있지만, 집을 지은 사람의 독창성이 엿보이고 후세에 개조나 보수가 되지 않아 거의 원형대로 보존돼 있어 중요민속자료 제26호로 지정됐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TV 드라마 '녹두꽃'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봄 기운을 가득 안고 있는 정읍 내장산의 모습. 내장산은 단풍으로 유명하지만, 사계절 내내 (사진제공=정읍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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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더 아름다운 내장산(內藏山), 그곳에 숨겨진 아픔
흔히 가을의 내장산을 기억한다. 전국 최고로 꼽히는 단풍 명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의 내장산은 푸른 산록을 그대로 간직한 청정 구역이다. 정읍 9경 중 1경인 내장산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내장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렸고,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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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은산으로 불렸으나 "산 안에 감춰진 것이 무궁무진하다"라는 뜻을 담은 안 내(內), 감출 장(藏), 즉, 내장산으로 불리게 됐다. 내장산에는 계곡을 끼고 있는 수직의 직벽에 용굴이 있다.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이 굴 안에는 조선왕조실록이 숨겨졌다. 정읍 태인의 선비 손홍록과 안의는 전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 용굴로 옮겼다.
손홍록과 안의는 내장산으로 가져온 실록을 용굴에 감추고 1년이 넘도록 그곳에 머물며 지켰다. 전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805권을 쉰여섯 개 궤짝에 나눠 담고 말에 실어 60km나 떨어진 내장산으로 옮겨왔던 이들의 진심은 눈물겨운 지킴에서 묻어난다. 이후 실록은 선조가 피신해 있는 해주까지 이송됐다가 영변의 묘향산으로, 다시 강화도로 옮겨졌다. 이때도 손홍록과 안의가 함께했다.
내장산국립공원을 내려오면 연못가에 자리잡은 우화정을 볼 수 있다. 호수 주변에는 당단풍, 수양버들,두릅나무, 산벚, 개나리, 산수유 등이 둘러싸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김소희 기자 k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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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이 내려앉은 내장산국립공원을 내려와 한참을 걷다보면 우화정(羽化亭)을 만난다. 정자에 날개가 솓아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어 우화정이라고 부른다. 연못가에는 당단풍, 수양버들, 두릅나무, 산벚, 개나리, 산수유, 복자기 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연못을 수놓은 한 폭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투데이/정읍(전북)=김소희 기자(ksh@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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