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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언제까지 그들을 병원에 가두기만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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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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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 정신병원?”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가자 했더니 택시기사님이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2018년 마지막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지요.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1962년 국립정신병원으로 개원한 뒤 2016년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건물도 옮겼는데, 이런 기관이 서울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인구 100명 중 1명. 조현병을 앓는 사람들 역시 오랫동안 우리 곁에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들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에서 보건복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박현정입니다. 최근 ‘진주 아파트 참사’를 비롯해 조현병에 대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러한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한 존재’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고 당부합니다. 적정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해 증상이 악화될 때와 증상이 완화된 이후 환자들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고 했습니다. 이영문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중증 정신질환을 특정 병명으로 분류하기보단 증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환청·망상 등 일상이 어려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병명만 따져봐도 조현병, 조울증, 치매, 알코올 의존증 등 다양하니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조현병 환자들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했습니다. 병을 앓게 되면서 위축됐고 대인관계도 어려워졌습니다. 환자나 가족 모두 ‘어찌할 바 모르다’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서야 병원을 찾습니다.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환자나 가족들이 도움을 청할 만한 곳도 없었고요. 그나마 제가 만난 분들은 부모의 지지를 기반으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을 한 경우였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은 학력·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족과 환자에게 더 큰 타격을 주기 마련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가족에게조차 기댈 수 없는 환자들은 고립되기 십상입니다. 발병 이후 마음을 줄곧 다쳐온 이들을 치료에 응하게 하는 건 ‘정보 공유’만으론 부족한 일입니다. 가족들에게만 부담을 지울 수 없는 일입니다.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국가는 오랫동안 정신장애인을 돌보는 일에서 빠져 있었는데요.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의사 1명의 소견만 있으면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의사 1명이 60명의 입원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한 열악한 환경에서 효과적인 치료는 이루어지기 힘들었습니다. 돌봄에 지친 가족들이 강제입원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입원기간 역시 치료 목적을 벗어나 길어졌고요. 2016년 기준 한국의 조현병·망상장애 환자 평균 입원기간은 196.4일로, 독일(34.3일), 멕시코(65일), 체코(70.4일), 칠레(94.6일)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우리 사회는 치료를 빌미로 정신장애인을 병원 안에 가둬놓았던 셈입니다.

한겨레

국가는 이런 구조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나 법만 바꾸었을 뿐 중증 정신장애인이 스스로 증상을 관리하면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반 마련은 미뤄왔습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면 안전한 이송과 질 높은 치료를 보장하는 등 위험 대응과 보편적 인권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는 치열한 노력도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뒷짐 지고 있는 사이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커지고 사회적 약자가 자신과 또다른 약자를 해치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의사·정신건강사회복지사·정신재활 전문가, 환자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박현정 사회정책팀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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