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매체 맞보복 시나리오 거론... "美농산물 관세·국채 손대고 외환·주식시장 때릴수도"
미⋅중 무역전쟁 종식을 위한 막판 무역협상을 앞두고 중국이 관영매체와 학자들을 동원해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 시나리오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발전모델을 해치는 미국의 요구는 거부한다"는 마지노선 사수 의지도 확인하고 있다.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과거의 중국 발전방식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언과 "중국의 발전모델을 존중하라"는 시진핑(習近平)국가주석의 원칙이 충돌하고 있다.
9일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는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 워싱턴DC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막판 담판을 벌인다.
지난 2월 베이징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운데)와 류허 중국 부총리가 무역협상을 마친 뒤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신화망 |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와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공동 사설에서 "중국은 거칠게 말하는 미국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역전쟁 격화를 대비해 중국은 이미 각종 준비를 했다.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기업의 손실을 지원하는 등 중국은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미국보다 충분한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밍(白明) 중국 상무부 국제시장연구소 부주임은 "가장 직접적인 대응책은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중국은 아직 관세를 인상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이 2500억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폭탄을 던진 데 대응해 총 1100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각각 5%와 10% 관세를 부과해왔지만 이를 20%와 25%로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류웨이둥(劉衛東) 중국 사회과학원 미국 담당 연구원은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면 미국의 물가가 확실히 올라가고. 중국은 모든 미국기업을 상대로 전면적인 보복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금요일(10일) 관세를 올리면 미국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물고기가 죽고 그물은 찢겨진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의 거시 경제 분석가인 둥사오펑은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에 대해 관세를 올리고 미국 국채 보유량을 조정하는 등 많은 대응책이 있다"고 말했다. 메이신위(梅新育)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 연구원은 미국의 기둥인 주식과 외환 시장을 겨냥할 수도 있다면서 "중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에 집중하기보다는 미국의 다른 분야를 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상무부는 전날 USTR가 관보를 통해 2000억달러 어치 중국산 수입상품에 부과해온 추가 관세율을 10일부터 10%에서 25%로 올린다고 공지한 직후 심야 담화문을 통해 필요한 반격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며 맞보복을 예고했다.
중국이 강경 입장을 보이는 건 미국의 요구가 중국 발전모델을 개선하는 수위를 넘어 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에 자문하고 있다는 익명의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산업과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철회 같은 미국의 일부 요구는 중국의 발전모델을 해치는 것으로 중국이 발전패턴을 포기하는 자살행위보다 25%의 고율관세를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합의를 위해 마지노선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결과를 감내할 수 있고, 실패에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1월 방중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중국이 선택할 길을 따라 발전할 권리를 존중해달라"고 당부하는 등 발전모델을 다른 나라에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시 주석은 "역사와 현실은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살릴 수 있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켰고, 이는 역사의 결론이고 인민의 선택이다"고 강조해왔다.
미국은 합작 강요, 외자 규제, 행정 심사와 인허가를 통한 기술이전 압박 등 공정 경쟁을 해치는 중국의 발전방식 수정을 요구하면서 무역협상을 벌여왔다. USTR에서 지재권을 담당했던 아미 셀리코 울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중국팀장은 "과거 10년 중국 정부가 자유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다"며 "미국은 외국투자자들이 중국 시장에서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과거에 약속한 경제자유화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위성연설에서 중국의 이웃나라를 향한 호전적 태도와 함께 국가중심적 경제모델과 자국내 전체주의 수용을 세계가 직면한 새로운 위협으로 지목했다.
앞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작년 10월 미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필연이라고 생각했던 자유중국(free China)의 탄생은 실패했다"며 "중국은 여전히 모든 형태의 자유(경제·정치·재산권·개인 및 종교의 자유·인권)를 탄압하는 전체주의인데다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라고 비판했다.
중국이 미국 요구의 일부를 중국 발전모델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배경이다. 중국은 특히 이번 무역협상 타결이 자칫 19세기 중국이 국력이 약해서 외세와 맺은 불공정 조약을 떠올리게 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이번 협정 초안을 구성한 7개 장(章)에서 모두 미국이 애초 무역전쟁을 일으킨 지재권 강탈, 기술이전 강요, 환율조작 등 핵심적인 불만 사항들을 해결할 법률 개정 약속을 삭제한 배경에도 평등 협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비쳐진다. 환구시보는 "미국이 정당하지 못한 요구를 했고 중국은 미국의 마지막 몇 가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는 평등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플로리다주 패너마시티비치에서 한 유세에서도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 "중국이 합의를 깨뜨렸다(broke the deal)"며 "중국이 우리의 노동자들을 편취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과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경고를 이어갔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전 USTR 부대표)은 "이번에 (미⋅중)협상이 깨지면 무역전쟁으로 되돌아가고, 이는 양국과 양국 국민을 해칠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배녹번 글로벌 포렉스의 마크 챈들러 수석 마켓 스트래티지스트는 모든 중국산 수입품이 미국의 추가관세 부과 대상이 되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을 0.5~0.75%포인트 끌어내리는 반면 중국의 성장률 인하폭은 1.5%포인트로 더 클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하지만 "2년 뒤 한 지도자(트럼프)는 유권자 앞에 서야하지만 다른 지도자(시진핑)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권자표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중국의 정치체제가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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