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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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뒷골목이나 집밥도 관광상품이 된다. 서울 동대문을 거쳐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낙산공원에 오른 캐나다인 아만다 도(27)는 이마 위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성곽 옆으로는 나지막하면서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가가 내려다보였고, 다시 도심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높은 빌딩숲이 대비를 이뤘다. “높은 빌딩과 깨끗한 도심의 거리보다 성곽 아래쪽 일반 주택가 풍경이 더 매력적이라네요.” 가이드를 맡은 김민경씨(31)가 아만다의 소감을 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너무 흔해서 아무 감흥이 없을 동네 모습도 여행객들한테는 색다르게 다가오나 봐요. 물론 여행 중이라 마음이 열려 있어서 더 그렇겠지만요.”
숨은 맛집 투어·뒷골목·성곽길 등
누군가에겐 낯익은 풍경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다가온다는 점은 바꿔 말하면 사업의 기회라는 뜻도 된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서울 내 투어상품을 팔고 있는 김씨는 우연히 떠오른 생각을 부업으로 연결시켰다.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김씨는 평소 취미인 맛집 탐방을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여행 사이트에 소개된 맛집 탐방 투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이런 투어상품이라면 나도 가이드 역할을 잘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인기 투어상품을 모방해 여행객을 모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유명세로 미어터지지 않으면서도 숨은 맛집을 3~4군데 소개했던 투어상품은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다. 영어와 중국어를 어느 정도 하지만 실제로 외국인들과 부딪치며 교류한 경험은 없었던 탓에 겪은 시행착오였다. 그래서 김씨는 현재 독립가이드들이 가장 활발하게 소개하는 미식투어 대신 골목투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물론 내가 잘 알고 있는 골목들을 소개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 자신도 본업 때문에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만큼 좋아야 여행객들도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능한 한 다양하게 변화를 주며 동선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장소와 체험을 선사하는 단기 여행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기성 여행사에서 개발한 패키지형의 상품 대신 자유여행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는 방식이다. 에어비앤비나 트립어드바이저 등의 중개서비스 업체에 올라온 여행상품들을 보면 짧게는 1시간에서 길어야 4~5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특정한 콘셉트에 맞춰 색다른 관광을 할 수 있다. 가격은 시간당 1만원대에서 3만원대 사이에 걸친 상품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인기를 끄는 주제는 음식 관련 투어다. 저녁시간에 모여 한국의 음식문화가 잘 드러나는 맛집에서 대표 메뉴만 한두 가지씩 먹고 다음 식당으로 옮기는 투어는 각 프로그램마다 특색이 있어 내세우는 콘셉트도 다르다. 아예 한식을 요리하는 과정을 간단히 체험하면서 자신이 만든 한식을 직접 맛보기도 하고, 반대로 특정 국가의 음식을 내걸고 영업하는 식당들만 골라 현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본토의 맛과 한국식으로 재해석된 맛을 비교할 수 있게도 해준다. 그밖에 공공자전거를 빌려 한강을 비롯해 서울시내 이곳저곳을 하이킹하는가 하면, 계절마다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몇몇 대학의 캠퍼스를 찾아 돌아보기도 한다. 전각을 새기거나 서예를 하고,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다.
단체관광과 자유여행 사이 틈새시장
중국 선전에서 온 류줘양(25)은 아예 한국에 들르는 기간 대부분을 이러한 개별 여행상품을 즐기는 식으로 보낸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한 뒤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여행상품이 일정에 맞으면 신청해서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이날 찾은 종로 광장시장은 전에도 와본 적 있지만 그때 먹었던 육회가 끌려 다시 방문했다. 전날 저녁에는 족발을 시작으로 막걸리와 파전, 주꾸미숙회 등으로 이어진 미식투어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잠실과 성수동 일대를 돌고 온 참이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여행사의 단체상품 때문에 관심도 없는 인삼가게나 화장품가게에 끌려다니던 기억이 안 좋아서 실망했고, 그 다음엔 완전 자유여행으로 오니 어디 가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해 고생을 했다”며 웃었다. 이젠 서울과 부산, 전주 등지를 여러 차례 방문한 덕에 대중교통 이용도 쉽게 할 정도지만 관심을 끄는 색다른 투어상품이 계속 나오고 말이 안 통하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어 여전히 이런 단기 여행상품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비단 외국인 여행객만이 아니라 한국인도 부담없이 여행상품을 즐기기도 한다. 고궁이나 박물관 등 외국인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명소 외에 골목이나 거리마다 특색이 있는 곳과 숨은 맛집은 바로 그 지역 주민이 아니면 한국인이라도 알고 찾아가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부터 인왕산,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한양도성 주변 안내 투어를 비롯해 을지로와 삼청동 같은 도심 골목길 투어 등을 진행하는 1인 가이드 신모씨(37)는 “도성 성곽길 투어는 의외로 50대 이상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도 신청할 때가 많다”며 “타 지역은 물론 서울의 다른 동네에서 오신 분들도 막상 성곽으로 이어지는 산길 진입로를 찾기 어려워하기도 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샛길까지 알려드리면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렇게 여행사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이 독립적으로 여행상품을 개발해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무엇보다 개인이 창의력을 온전히 발휘해 틈새시장을 만들어내면서 한편으로 해외에 전파되는 한국의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기존 여행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조직을 갖춘 여행사로서는 일일이 맞춰주기 어려운 자유여행객의 수요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이 장점”이라며 “대형 여행사와 직접적으로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인 시장 참여자들이 나름의 시장 범위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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