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이트하이저(왼쪽)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지난해 3월 1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철강 생산과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가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폭탄’ 투하 여부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한(18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주요 당사국 중 하나인 유럽연합(EU)은 미국이 고율 관세(25%)를 부과키로 결정한다면 즉각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며 선언했다. EU는 “구체적인 대응 계획도 이미 수립했다”고 공언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이 좀처럼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무대로 한 또 다른 무역 전쟁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 무역 전쟁이 현실화할 경우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유럽산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가 현실화한다면 EU도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미 (보복 관세가 부과될) 미국산 수입품 목록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미국 정부의 (자동차 관세 부과) 공식 발표 땐 우리도 (보복 관세) 리스트를 곧바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유럽을 상대로 관세 전쟁의 방아쇠를 당길 경우에 대비한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EU는 미국산 수입품 200억유로(225억달러ㆍ26조 7,240억원)어치에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U 측이 이런 속내를 내비친 건 트럼프 대통령이 18일까지 외국산 자동차ㆍ부품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하는지 판정하고 대응 방식도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 2월 17일 백악관에 이 문제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안보 위협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이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할 때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보고서를 받은 지 90일 내에 조사결과와 건의에 대한 수용 여부를 정해야 한다.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자동차ㆍ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가 같은 해 7월 미ㆍEU 간 무역 협상 개시로 이를 잠정 보류했는데, ‘휴전 모드’에 들어간 지 10개월 만에 결국 ‘자동차 관세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미국이 관세 부과에 나설 경우 미국에서 판매되는 유럽산 자동차 가격은 평균 1만유로 정도 더 비싸질 것이라는 게 EU 집행위원회의 추산이다. 블룸버그통신은 “EU가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와 부품의 가치는 철강, 알루미늄 수출 합계의 10배에 달한다”며 “(미국의 관세 부과 강행 시) 유럽의 보복 조치는 더 큰 범위를 타깃으로 삼을 것이며,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사이의 긴장감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지난해 4월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대결 구도가 미국과 EU 중심이지만, 한국 자동차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보장했던 수출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고 고율 관세가 붙으면 가격 경쟁력이 대폭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미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2018년 기준)에 달한다”며 “미국의 관세 부과가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총 생산이 8% 감소하고 제조업 분야에서 10만명의 고용 축소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현대ㆍ기아차의 경우 미국 현지 판매량이 반토막 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127만대 중 절반가량인 60만대가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한 차량이었다.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각각 현지 공장이 있지만, 생산 능력이 이미 한계에 이르러 국내 생산량을 대신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지금보다 20% 이상 높은 가격으로는 판매가 불가능하다”며 “미국에 이어 다른 나라들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비슷한 조치를 내놓으면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업계는 ‘25% 관세 부과’를 가정할 때, 현대ㆍ기아차의 연간 영업이익이 37%나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 시점을 수개월 뒤로 연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 건의를 수용하지 않고, 다른 조치를 취하거나 아무 조치를 내리지 않는 것도 법적으로 가능해서다. 미국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수출국들과의 협상 지속을 선택할 경우 11월 14일까지 최장 180일간 결정을 미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추가 분석’을 이유로 110일간 결정을 연기하거나, 이번 상무부 조사는 그대로 종료하고 새로운 조사를 지시할 수도 있다. 때문에 현재 미국과 무역협상을 벌이고 있는 EU와 일본도 “트럼프 정부가 협상 중에는 자동차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결정 연기’를 촉구하고 있다. 말름스트룀 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7월의 ‘그 말’을 지키길 바란다”며 “협상을 결정한다면 합의는 매우 빨라질 수 있고, 양쪽 모두에 상호 이익이 될 것이며, 성장을 확대하는 한편 미래의 더 커다란 무언가를 위한 신뢰도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