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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나의 5.18]살아돌아온 형과 깊게 새긴 광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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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 [the300]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머니투데이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사진=백지수 기자


1980년 나는 전남 고흥군 포두면 포두중학교 2학년이었다. 같은 전남이라지만 고흥은 광주에서 자동차를 타고 3시간을 더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남쪽 끝이다. 현장의 소식은 도시를 건널 때 마다 흐려졌다. 나는 주로 부모님, 동네 어른들의 표정과 대화에서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점만 전달받은 기억이 있다.

80년 5월에 대한 최초의 풍문은 폭도들의 폭동이 광주에서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TV방송이 끊겼다. 광주에서 온 누군가로부터 들었다는 각각의 이야기는 달랐다. 어른과 아이들은 온갖 풍문에 휩싸였다. 고흥은 '여수·순천 사건'의 생채기가 깊었다.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갖고 나의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신군부를 불신했다. 광주에서 무언가 잘못되고 위험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직감했다.

그때부터 어른들의 진짜 걱정이 시작됐다. 형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감감무소식에 온 가족이 며칠 밤잠을 못 이뤘다. 아버지가 광주에 직접 가보겠다고 결심한 날 밤 형이 집으로 돌아왔다.

형을 처음 본 순간 '전쟁터를 빠져나온 사람의 모습이 저런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시위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며칠간 광주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전했다. 두려움이 떨던 광주에서 탈출을 결심했다고 했다.

대중교통은 마비된 상태였다. 걷고 걸어 화순을 넘고 보성 어디쯤에선가 겨우 지나가는 트럭이 형을 태워줬다. 고흥 어디선가 또 걸어서 집에 온 형을 부등켜 안고 우리 가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형의 목소리와 눈빛으로 전해들은 광주의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분노를 심어줬다. 나는 평생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삶의 동인(動因)은 '광주정신' 이 됐다.

형처럼 고등학교를 광주로 진학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동우회장을 맡으며 '광주정신'이 왜곡되거나 희석되는 게 안타까워 사단법인 광주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 광주의 진실을 밝히고 광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일부 국회는 도리어 광주를 부정하고 외면하려 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을 2019년에 다시 마주하게 될 줄 몰랐다.

같은 해 용기있는 전직 주한미군 정보요원의 '전두환 사살명령' 발언이 나오며 진실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싶다. 정의로운 나라로 향하는 첫 걸음이 시작됐다. 5.18실종자 지문기록·시신수장 첫 증언, 진상조사위 출범,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5.18기념재단' 출범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 결코 이르지 않지만 늦지도 않았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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