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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Weekend Interview] UAE 에미레이트항공 韓여성 파일럿 구정임 부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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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구정임 에미레이트항공 부기장이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기 전 비행기 모형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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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파일럿은 요즘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는 전문직이면서 직업에 대한 이미지 또한 좋기 때문이다.

근무조건도 독특하다. 승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직업이기에 과로하지 않도록 국가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놨다.

한국의 경우 항공사 파일럿은 한 달에 90시간만 비행하면 된다. 주 90시간이 아니라 월 90시간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노선을 운행한다고 가정할 때 3번 왕복하면 그 달 근무는 끝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금녀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콕핏(Cockpit·조종실)에 도전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세계 최대 항공사 중 하나인 에미레이트항공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 여성 파일럿이 된 구정임 부기장(38)이 대표적이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유상 여객수에 운항거리를 곱한 수송실적(RPK) 기준 세계 최대 항공사로 꼽힌다.

구 부기장은 항공사 승무원을 하다 조종사에 도전해 성공한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수천 ㎞ 떨어진 중동에 건너가 끝없이 도전해 콕핏 입성에 성공한 구 부기장을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만났다.

―승무원으로 항공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데다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영어에 자신 있었기 때문에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2003년 대학교 4학년이 됐을 때 외환위기 여파로 취업난이 심했다. 외국계 회사라면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당시 항공사 승무원 채용이 전무했는데 중동 항공사 한 곳에서 공채를 뽑는다고 했다. 25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승무원이 되기 전에 학원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수많은 아르바이트 중 하나였다.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캐나다로 어학연수 갔을 때는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등학생을 상대로 영어 과외를 했다.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은.

▷초등학교 때 병원놀이를 좋아해 의사가 꿈이었다. 중학교 때는 수의사로 바뀌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입시 준비에 몰두하느라 이렇다 할 장래 희망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지만 교차 지원이 가능해 덕성여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중동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여성의 경제활동이 어려운 지역 아닌가.

▷원래 중동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가서 보니 보수적이거나 삭막하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중동에 대해 생각할 때 히잡을 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을 떠올리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의 국제도시에 가보면 한국보다도 더 현대화돼 있다. 서양과 동양을 이어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많은 외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들 국가는 국민 수가 적다 보니 외국인 비율이 높다. 남녀 차별도 전혀 없다. 오히려 유교 문화권인 한·중·일이 여성에게 더 배타적인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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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항공사에 취직하는 걸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았나.

▷중동은 거리상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어르신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걱정하시기에 부모님을 모시고 중동에 다녀왔다. 높은 빌딩이 즐비한 초현대식 도시 모습을 보시고 부모님이 많이 놀라셨다.

―어떻게 조종사의 꿈을 갖게 됐나.

▷조종사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승무원이 된 뒤였다. 승무원은 비행 중에 승객뿐 아니라 기장·부기장도 챙긴다. 식사·커피를 갖다주고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잠깐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하루는 비행 중 콕핏에 들어갔는데 내가 비행기 조종에 관심을 보이니까 멕시코 출신 남자 기장이 "너도 할 수 있다"며 비행 기본 이론이 담긴 책을 건네줬다. 근무가 끝난 후 숙소에 들어가 책을 읽어봤는데 꽤나 흥미로웠다.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승무원이 된 지 4년이 지난 2007년이었다. 그때 승무원을 그만두고 조종사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준비했나.

▷알아보니 미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여러 곳에 비행학교가 있었다.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조종사를 양성하는 카뎃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문제는 비싼 트레이닝 비용이었다. 카뎃프로그램은 해당 항공사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은 대신 비쌌다. 여러 선택지 중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미국 플로리다 비행학교에 들어갔다. 경제적이지만 항공사 취업 성공률은 낮은 방법이었다. 여유 자금이 많지 않아 가장 저렴한 방법을 택했다. 미국 비행학교가 가장 저렴했음에도 당시 트레이닝 비용이 4만달러나 됐다. 승무원을 하며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부었다.

하기는 카뎃프로그램에 들어간다고 해도 여성 조종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조종사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조종사가 되는 과정은 어떠한가.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에미레이트항공의 경우 서류전형을 통과한 지원들이 3~4일 동안 같이 면접을 본다. 시뮬레이터에서 비행 실력을 체크하고 인성을 보기 위한 그룹 토론, 1대1 인터뷰 등을 거친다. 면접 기간에 매일 몇 명씩 떨어뜨리고 마지막날까지 남은 2~3명이 최종 합격한다.

―비행학교 졸업 후 조종사로 취직하는 과정은 순탄했나.

▷조종사 자격증은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에 취득했다. 미국에서 돌아왔더니 아무 곳에서도 조종사를 채용하지 않았다. 그때는 도산하는 항공사도 많았다. 조종사로 취직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50곳 지원했는데 면접까지 간 건 3~4번밖에 없었다. 절박한 마음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주소를 보고 항공사에 무작정 찾아갔다. 예정된 채용일정이 없는 항공사였지만 인사담당자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의 적극성을 대견하게 생각했던지 인사담당자가 나중에 채용일정이 나왔다며 연락을 줬다.

―부모님이 파일럿이 되겠다고 하니 반대하지는 않았나.

▷아버지는 적극 찬성했지만 어머니는 여성이 할 일이 아니라며 반대하셨다. 하지만 파일럿을 향한 나의 열정과 꿈을 꺾을 수는 없었다. 파일럿에 합격했으니 그런 줄 아시라고 통보하다시피 말씀드렸다.

―조종사가 되기 전 중동에서 4년 동안 부동산투자회사에도 다녔다.

▷중동은 아시아와 유럽 중간에 위치한다. 아시아든 유럽이든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오면 곧바로 날아가기 위해 중동에서 계속 머물렀다. 생계 유지를 위해 중동 현지 회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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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조종사 비율이 계속 늘고 있나.

▷여성 조종사 비율을 정확히 잘 모르지만 증가 추세인 건 확실하다. 에미레이트항공만 놓고 보면 조종사 4000여 명 중 약 100명이 여자다. 나처럼 승무원 출신이 조종사에 도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에미레이트항공사는 어떤 곳인가.

▷중동 최대 항공사다. 휴가는 1년에 48일 주어지고 복지가 잘 갖춰져 있다. 국내 항공사보다 월급이 많은 편이다. 근무 환경이 개방적이고 남녀 차별도 없다. 이렇다 보니 비행학교를 졸업한 직후 에미레이트항공사에 곧바로 입사하는 건 쉽지 않다. 대부분 다른 항공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들어온다. 나도 다른 중동 항공사를 다니다가 들어왔다.

―승무원을 하다가 조종사로 변신했다. 향후 다른 변신을 계획하고 있는가.

▷현재로선 없다. 난 조종사라는 전문직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승무원도 그렇지만 조종사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고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문물을 넓히고 교양을 쌓을 수 있다. 또한 조종사는 간단한 직업이 아니다. 부기장, 기장을 거쳐 베테랑이 되면 후배 조종사를 양성하는 시험관이나 교관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항공사 임원 중에도 조종사 출신이 많다. 조종사라는 직업이 가진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용감한 인생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난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인가를 스스로에게 항상 묻는다. 또한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여러 국가 사람들을 두루 만나보니 다른 나라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유독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더라. 겸손을 미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서로 다르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였으면 좋겠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존중해준다. 스스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당장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하더라도 아직 젊다고 생각해야 한다. 많은 시간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취직했는데 나만 아직 못했으니 큰일 났다'며 조급해해서는 안된다. 나도 32세에 조종사가 됐다. 다른 동료보다 6년 정도 늦었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해봐라. 그럼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 She is…

1981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 한일고등학교를 거쳐 덕성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카타르항공에 2003년 객실 승무원으로 입사한 후 2007년에 퇴사했다. 2008년 미국 플로리다주 NAC 비행학교에 입학해 상업용 파일럿코스를 수료했다. 2009년 중동 투자회사에 입사해 4년여간 근무한 후 2013년 에어아라비아 부기장으로 입사했다. 2016년 세계 최대 항공인 에미레이트항공으로 옮겨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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