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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여행경보 지역에서 납치되면 개인 책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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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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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단체에 납치됐던 한국인 두 명이 최근 풀려났습니다. 리비아에서 납치된 지 315일 만인 지난 16일 석방된 주아무개(62)씨는 18일 귀국합니다. 지난 14일엔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던 40대 한국인 여성 ㄱ씨가 돌아왔습니다. ㄱ씨는 세계여행 중이던 올해 1월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건너가 세네갈, 말리, 부르키나파소를 거쳐 베냉공화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납치됐다고 합니다. 모두 한국 정부가 지정한 ‘여행경보’ 지역들이었습니다. 다행히 ㄱ씨를 비롯해 붙잡혀 있던 프랑스인 2명과 미국인 1명은 피랍 28일 만에 무사히 구출됐지만, 구출 작전에 투입됐던 프랑스군 특수부대원 2명은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위험지역을 여행한 피랍자들을 향한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습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이 “(그들이) 왜 그런 위험한 곳에 갔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피랍자 책임론’은 가열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통일외교팀에서 외교부를 취재하는 김지은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여행경보’ 제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듯합니다. 외교부는 특정 국가나 지역 방문·체류 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을 지정해 위험 수준을 안내하는 여행경보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행경보’는 남색경보(여행유의)-황색경보(여행자제)-적색경보(철수권고)-흑색경보(여행금지), 이렇게 네 단계로 나뉩니다. 여권법에 따라 흑색경보가 지정된 여행금지 국가에 정부의 허가 없이 방문·체류할 경우에는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되지만, 그외 여행경보 지역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가 없습니다. 또한 여행금지 국가라도 외교부 장관의 허가를 예외적으로 받으면 머물 수 있습니다. 현재 리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소말리아, 필리핀 일부 지역 등 7곳이 여행금지국(지역)입니다. 최근 미국이 자국 공무원 철수령을 내린 이라크엔 한국인 1500명가량이 예외적 허가를 받고 머무르고 있습니다.

ㄱ씨가 납치됐던 부르키나파소 남부는 2단계인 여행자제 지역이었습니다. 앞서 그가 머물렀다는 말리는 적색경보가 내려진 철수권고 지역입니다. 이에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ㄱ씨가 화를 자초한 게 아니냐” “위험지역 여행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등 여러 논란이 일었습니다. ㄱ씨가 납치된 지역의 여행경보가 위험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정부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7월 납치된 주씨는 여행금지국인 리비아에서 대수로청 산하 에이엔시(ANC)라는 수로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붙잡혔습니다. 별도의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외교부는 주씨의 귀국 비용과 관련해 리비아 대수로청과 협의가 원활하지 않은데다, 가족과도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세금 지원 여부 결정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고발 등 행정 조처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개인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합니다. 2014년 리비아 내전 뒤 흑색경보를 발령한 정부의 철수 권고를 무시하고 체류하다 붙잡혀 국민의 세금을 쓰는 건 부당하며 무단체류자이기 때문에 되레 처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 뒤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다른 측면도 존재합니다. 리비아는 주씨가 20년 이상 생계를 영위해온 터전이었습니다. 주씨 피랍 뒤에도 리비아에는 교민 4명이 철수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들 중 3명도 주씨와 같은 에이엔시 소속입니다. 이들은 모두 60대 교민들로 한국으로 귀국하면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찾기 어렵다며 버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지난 4월 이들에 대해 여권 무효화 조처를 하고 여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강제로 이들을 철수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한겨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강제력을 동원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난제라는 것을 두 피랍사건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김지은 통일외교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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