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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대남비판 멈추지않는 北…식량지원 거부땐 대화재개 `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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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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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식량 지원을 둘러싼 남·북·미 정치적 셈법이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최근 10년래 최악의 수준이라는 북한 식량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공식화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 17일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대북 지원 자금 800만달러(약 95억6400만원) 공여를 결정하며 대북 식량 지원 추진 의사를 밝혔다. 거듭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무력시위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 지원을 대화 재개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반면 북한은 자신들의 절박한 식량 사정을 부각하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통해 식량난에 처한 현실을 숨기지 않고 '쌀로써 당을 받들자'며 내부 결속에 활용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한국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방침을 지지하면서도 대북제재 약화를 우려하며 한발 물러서서 관망 중이다.

우선 한국은 대북 식량 지원을 통해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꽉 막힌 남북, 미·북 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에서는 다음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이전에 식량 지원 등을 연결고리로 남북 간 대화 테이블을 다시 열어 미·북 대화 재개 동력으로 삼겠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실제로 북한이 한국의 식량 지원에 대해 일정 부분 호응하며 대화 물꼬가 트인다면 정부가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책임 있는 당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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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물을 댄 논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9일 취임 2주년 계기 방송 대담에서 "(대북 식량 지원이) 대화 교착 상태를 조금 열어주는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그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해줬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극복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수혜자'인 북한과의 의사 소통 없이 한국 정부 독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만일 북한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국내 여론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비판과 정치적 부담도 고스란히 정부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식량 지원에 우호적 입장을 가진 쪽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한국의 뜻 있는 단체들과 시민사회에서 북한의 절박한 식량난에 도움을 주고자 뜻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저렇게 자신들 잇속만 생각해서 미사일을 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좀 힘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북한이 아직 주먹을 쥔 채 팔짱만 끼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대내외적으로 자력 갱생과 자립 경제를 강조하는 북한이 한국의 식량 지원 관련 대화 제의에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찬반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19일 북한 대외용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한국의 대북 식량 지원 논의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한국·미국·일본이 참여하는 안보 관련 협의를 거론하며 대남 비판을 지속했다. 이 매체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연례 협의체인 제11차 한·미·일 안보회의(DTT) 개최에 대해 언급하며 "조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려는 불순한 군사적 모의판"이라고 꼬집었다.

북한은 절박한 식량 문제를 연일 대내용 매체를 통해 부각하면서 내부를 결집·단속하려는 모습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8일 1면에 '모든 역량을 총집중하여 모내기를 적기에 질적으로 끝내자'는 사설을 싣고 현재 자신들이 식량난을 겪고 있는 주된 원인을 미국 등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압박 때문으로 돌렸다. 신문은 해당 사설에서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인민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밀고 나갈 수 있다"며 식량 문제와 체제 보위를 사실상 동일시했다.

북한은 향후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식량 지원을 촉구할 개연성이 크다. 또 내부적으로는 '쌀이 곧 사회주의'라는 논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식량 지원 관련 대화 제의에 대해서는 오는 9월 쌀 수확기까지의 식량 사정과 기상 상황, 한국 정부의 대북 입장과 조치, 대화 국면 추이 등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이 대북제재와는 무관한 사안인 만큼 한국의 호의적 대북 조치에 동의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있다. 만일 북측의 추가적 무력시위나 무응답 등으로 한국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더라도 이를 '한국의 독자적 행보'로 규정해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다만 미국 의회에서는 대북 지원 시기 등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된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간사인 마이클 매콜 의원(공화·텍사스)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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