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 복용자 13.8%는 가면성
저혈당 잦으면 신체증상 둔감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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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바로 가면 질환이다. 눈에 띄지 않도록 정체를 감추는 가면의 종류도 고혈압·저혈당·우울증 등 다양하다. 가면 질환은 첫 단추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한 상태다. 진단이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아 그다음 단계인 올바른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면 질환은 자신의 실체를 숨겨 질병 진단을 어렵게 한다. 크게 건강을 갉아먹고 있는 병적 상태인데 검사상 드러나지 않는 경우와 증상이 없어 검사나 진단을 시도하기 어려운 경우로 나뉜다. 가면 질환을 앓으면 필요한 진단·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보다 예후가 더 나쁘다.
상황 바뀌니 혈압 오르락내리락
대표적인 것이 가면 고혈압이다. 혈압은 변동성이 큰 생체지표다. 시간·장소·상황·감정 변화 등에 따라 들쭉날쭉 변한다. 따라서 평소에는 실제로 혈압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검사할 땐 멀쩡할 수 있다. 고려대구로병원 심혈관센터 박창규 교수는 “과로·스트레스가 심하면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면서 혈관이 수축해 일상생활 속 혈압은 높지만 건강검진이나 병원 진료에서는 혈압이 정상 범위로 측정된다”고 말했다. 대한고혈압학회에 따르면 고혈압으로 약물치료를 받는 환자 중 13.8%는 가면 고혈압이다. 진단에서 오류가 생기니 의료진이 적정 수준으로 혈압을 관리하기 어렵다. 실제로는 고혈압 상태라 심장·뇌 혈관의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
자각 증상이 없는 가면 저혈당도 주의해야 한다. 당뇨 환자는 병을 오래 앓을수록 인슐린·글루카곤 등 혈당을 조절하는 체내 호르몬 반응이 둔감해진다. 게다가 당뇨약으로 인한 저혈당을 반복 경험하면서 식은땀·현기증·공복감 같은 저혈당 증상을 느끼는 신체 감각도 무뎌진다. 경증 저혈당일 때는 사탕·주스 등을 챙겨 먹으면서 대처한다. 하지만 저혈당의 강도는 심해지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사라져 저혈당에 대한 경각심이 줄어든다.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전숙 교수는 “혈당이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졌는데도 방심하다가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고 말했다.
감정도 속일 수 있다. 가면 우울증이다. 속은 곪아 타들어 가도 겉으로는 밝게 행동한다. 속내를 감추기 위해 ‘밝음’ 혹은 ‘당당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본심은 외롭고 우울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부정적 감정을 숨기는 것이 버릇이 되다 보니 이를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 쉬어도 늘 피곤하고, 입맛이 없고, 자주 체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목과 어깨가 아프다.
속내 감추니 피곤하고 입맛 없어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진 교수는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 내과·정형외과·이비인후과 등 병원 여러 곳을 찾아다니지만 신체 증상은 낫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울증이 악화해 알코올중독, 분노 표출 등의 문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면 질환은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료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면 질환을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적극적으로 위험 인자, 신체 변화 등을 살피지 않으면 최적의 치료 시기나 방법을 놓쳐 병을 키울 수 있다.
첫째, 가족력·고령 등의 고위험군에 속할 경우 관련 수치가 정상 범위라도 의료진에게 정밀 검사를 요청하는 것이 좋다. 혈압을 측정할 때 장소·시간을 달리하거나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한다. 둘째, 스스로 신체 변화를 예민하게 살핀다. 혈당이 70㎎/ 이하로 측정됐는데 불안감, 식은땀, 몸의 떨림 같은 저혈당 증상이 없다면 가면 저혈당,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증상이 심해진다면 가면 우울증일 수 있다. 갑자기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는 만큼 담당 의료진과 치료·대응법을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권선미 기자
kwon 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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