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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환율 1200원 돌파 눈앞… 당국은 느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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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1100원대 초반이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최근 7거래일 연속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며 1200원대 턱밑까지 올라왔다. 지난 17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95.7원에 마감했는데, 2017년 1월 11일(1196.4원) 이후 2년 4개월 만의 최고치다. 원화 값이 급락하자 한국 경제의 대외 신뢰도 하락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지만 외환 당국은 "과도한 쏠림을 경계한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이미 외환시장에선 "이번 주 환율이 1200원대로 올라설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다. 얼마까지 올라갈지가 오히려 더 관심사다.

◇한 달 새 60원 뛰어오른 환율, 미·중 무역갈등에 국내 경기 부진 겹친 탓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최근 한 달 새 60원이 넘게 올랐다. 이런 흐름은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보면 두드러진다. 지난달 1일부터 지난 8일까지 달러화에 견준 원화 가치는 2.9%가량 떨어졌는데, 같은 기간 주요 신흥국 10개 통화 중 원화보다 더 떨어진 통화는 터키 리라화(-9%)와 아르헨티나 페소화(-3.7%)뿐이다. 경제 불안으로 통화에 대한 신뢰가 극히 낮은 국가와 우리나라 원화가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는 얘기다. 교역 상대국 통화가치와 물가 변화까지 고려해 산출한 원화가치(실질실효환율) 역시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원화의 실질실효환율(REER)은 110.20으로 전달보다 0.6% 하락해 2017년 9월(109.64) 이후 가장 낮다. 실질실효환율이 100보다 높으면 기준 연도인 2010년보다 가치가 올랐다는 뜻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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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급등은 여러 악재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경제 성적표가 크게 악화됐다. 지난달 25일 올해 1분기(1~3월) 우리 경제가 전 분기 대비 -0.3% 성장했다는 발표로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 있다. 여기에 매년 3~4월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배당금을 달러로 바꿔 본국에 보내 원화값이 약해지는 원인이 된다. 수출이 5개월 연속 줄어 달러 유입이 크게 줄었다는 점도 원화값 하락 원인이다.

대외 요인도 좋지 않다. 미국이 지난 1분기 3.2%(연환산 성장률 기준) 성장하며 강(强)달러 기조가 뚜렷한데,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간재 수출 대부분이 중국을 경유하는 한국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환율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다시 부각되는 것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추세도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17일 국내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1.89포인트(0.58%) 떨어져 2055.8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16일 연고점(2248.63)에서 한 달 만에 8.6%가량 하락한 것이다. 외국인은 최근 7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를 기록하며 1조70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급히 나설 이유 없다"…외환 당국, 원화 약세 즐기나

그러나 외환 당국은 별다른 대책을 낼 기미가 없다. 지난주 내내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원화 약세를 방관하고 있다는 해석마저 나온다. 왜 그럴까?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계에선 크게 3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먼저 환율이 올라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회복돼 금융시장에 충격만 크지 않다면 경제에 나쁘지 않다는 말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최근 수출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환율 상승은 견딜 만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수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원화값(환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외화자금 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금융 불안으로 국내시장에서 자금이 빠지지 않아 기업과 금융사들도 감내할 만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했다.

여기에 4개월째 0%대 저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환율이 올라 수입 물가가 오르면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경제가 침체되는 현상)’ 가능성이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 채권시장에는 달러 자금이 들어오고 있는 점도 정부가 개입에 소극적인 이유다.

15일 외국인 채권 투자 잔액은 113조2000억원에 달해 이달에만 3조4000억원이 불었다. 최근 연속 이탈한 외국인 주식투자금의 2배에 이른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금리 수준은 낮지만 유사시 현금화가 쉽고 부도날 위험이 적어 국채 등이 여전히 외국인에게 인기”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강하게 나서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단기적으로 환율이 1200원대 중반까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최경진 도이치증권 전무는 “시장에서 원화 약세의 경계선으로 여겨지는 1200원대로 환율이 올라서면 펀드와 기관투자자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원화를 처분해 30~40원가량 원화가치가 추가로 떨어질(환율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미국의 경기 흐름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달러 강세 압력도 진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준우 기자(rainrac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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