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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우지경의 여행 한잔] 남아공 사파리에서 만난 로컬 맥주 `블랙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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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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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는 아프리카에 있었다. 남아공 야생 동물 호보 구역, 크루거(Kruger) 국립공원이 있는 위스프릿(Hoedspruit) 공항에 도착하자 이국적인 기운에 마음이 술렁였다. 착륙하는 비행기 창 너머로 동물이 보였다. 활주로 옆을 활보하는 야생 동물이라니. 그제야 빅5(사자, 표범, 코뿔소, 코끼리, 버펄로)가 사는 동물의 왕국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사파리 룩을 입은 사람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주차장엔 사파리 차량이 빼곡했다. '설마 저 차로 카파마 사파리 리조트에 가는 건 아니겠지'란 생각을 하기 무섭게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개조한 차가 나와 일행 앞에 멈춰 섰다. 얼떨결에 지붕이 없는 차에 올라 운전을 맡은 사파리 가이드 레이나와 인사를 했다. 길은 이내 비포장 도로로 이어졌다. 옆으론 열대 초원 사바나(Savana)가 펼쳐졌다.

"우와 사슴이다!" 일행이 가리킨 곳엔 나선형의 긴 뿔이 달린 동물들이 검고 동그란 눈을 끔뻑였다. "임팔라(Impala·솟과에 속하는 포유류) 보고 그렇게 놀라는 거예요? 여기서 임팔라는 양처럼 흔해요. 오늘 저녁엔 사자를 볼지도 모른다고요." 흙먼지 휘날리며 차를 몰던 레이나가 말했다. 고개를 돌리자 기린 세 마리가 나뭇잎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사파리의 막이 올랐다.

오후 4시, 레이나를 다시 만나 본격적인 사파리 드라이브에 나섰다. 그녀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안전 수칙을 알려줬다. 드라이브 중간에 마실 걸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덜컹이는 차를 타고 사바나를 누빈 지 1시간30분 만에 해 저무는 벌판을 뛰노는 임팔라 떼와 쿠두(Kudu·솟과에 속하는 영양) 무리, 해가 지건 말건 벌러덩 누워 잠자는 사자 3마리, 수풀 사이를 홀로 지나가는 암사자를 보았다. 순간이었지만 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아니, 정말 목이 말랐던 걸까.

"뭐 마실래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운 레이나가 물었다. 물이나 주스를 주려니 했는데, 테이블엔 와인과 위스키가 놓이고 아이스박스엔 맥주가 그득했다. 나는 "로컬 비어, 플리즈!"를 외치고 블랙 라벨(Black Laver) 한 병을 받아 들었다. 캬! 난생 처음 동물의 왕국에 입성한 여행자의 긴장감과 갈증을 날려주는 청량한 라거였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블랙 라벨 이름은 원래 블랙&화이트 라거였는데, 블랙 라벨로 개명하며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흑인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게 됐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가득했다. 임팔라 눈빛, 사자의 걸음걸이, 평원을 물들이던 노을과 블랙 라벨 맥주의 맛이 밤하늘의 별처럼 마음에 새겨졌다. 아름다운 풍경은 술 한잔과 함께할 때 오래가는 법이니까. 다음날 거짓말처럼 빅5 중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 얼룩말과 조우했다. 표범만 빼고.

[우지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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