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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르뽀] “첨단 누리호 위성 로켓, 사람이 석 달간 조립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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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누리호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75t급 한국형 발사체 KSLV-ll는 1600여개 부품 90% 이상이 한국의 독자 기술로 완성된다. 전문가 1~2명이 최소 3개월 동안 손으로 조립해야 엔진 1개가 만들어진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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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가 1~2명이 붙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레고' 조립하듯 작업합니다. 엔진 하나 완성하는데 3~4개월은 걸리죠."

지난 16일 경상남도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 방음·방습·방진 경고판이 붙은 공장 안에 작업자 4~5명이 길이 5m에 이르는 로켓엔진 2~3개 앞에서 작업에 한창이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앞·뒤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붙이고 들어간 누리호 로켓 엔진 공장 내부는 뜻밖의 모습이었다. 첨단 로켓을 만드는 첨단 로봇 공장일 것이란 예상이 빗나갔다. 김종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액체엔진개발조립담당(차장)은 "로봇이 하기 힘든 방식으로 조립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 로켓 외부에는 무수한 케이블과 절연체, 센서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기계가 조립할 수 없는 분야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사업장은 국내 유일 가스터빈 항공엔진 개발의 요람이다. 1994년 F-16 전투기 엔진을 조립해 처음으로 출하하고 20여년이 지난 2015년 프랫&휘트니(P&W)와 엔진 국제공동개발사업 계약을 했다. 지금은 11만 4000평 규모의 사업장에서 차세대 항공엔진 립(LEAP) 부품이 제작돼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 기술 없는 조립 하청업체에서 전 세계에 엔진 부품을 개발해 파는 사업장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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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 항공기엔진 제작현장. 스마트팩토리 신공장은 정밀도가 높은 엔진부품을 3차원 검사기를 이용해 정확하게 치수 측정을 한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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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로켓 엔진이 대표 사례다. 한국형 발사체(KSLV-2)라는 이름이 붙은 이 엔진은 러시아와 협력해 2009~2013년 3차례 시도 끝에 성공한 나로호와 달리 순수 독자 개발한 발사체다. 지난해 11월 나로우주센터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2021년 봄 실제 발사를 위한 엔진 조립이 한창이다. 75t급 엔진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은 1600여개. 직경 3.5m에 높이 5m짜리 엔진의 원통형 몸체를 이어붙이는 작업부터 엔진 외부에 연결되는 각종 센서·케이블·펌프 부품을 사람이 손으로 직접 조립한다. 부품 조립과정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200t에 달하는 로켓을 지표면에서 600~800m 떨어진 고도에 안착시키기 위해 엔진이 1초에 소비하는 항공유는 약 256L, 3~4개월 동안 제작된 엔진은 약 125초 동안 불타오르는 것을 끝으로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임무를 완수한다.

김 차장은 "부품 1600여개 중 90% 이상이 국내 기술로 만들어졌다"며 "지난해 11월 누리호 시험발사에 성공해 대한민국 우주항공 시대를 여는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신 항공기·전투기 엔진용 부품 개발에 뛰어들며 고부가가치 사업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항공기·전투기 엔진 부품은 크게 케이스와 회전체로 나뉘는데 그동안은 케이스 부품 수출에 주력해왔다. 회전체 부품 개발과 제작은 높은 정밀도와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창원 공장 내부에 약 1000억원을 들여 2016년 '스마트팩토리'를 설립한 이후 항공기 엔진용 정밀 부품 수주도 날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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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부품 신공장에서 로봇이 엔진부품의 표면을 정밀하게 다듬고 있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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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부품 신공장에서 무인운반로봇(AGV)이 제품을 각 공정으로 자동으로 적재·운반하고 있다. 사방에 있는 장애물을 인식하면 멈추고 가기를 반복한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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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스마트팩토리 신공장에는 사람이 없다. 무인운반로봇(Automated Guided Vehicles)이 미리 생산계획에 따라 자재창고에서 원자재를 꺼내 생산 설비로 운반한다. 각 공정에서 대기 중인 로봇팔은 엔진 부품 표면을 정밀 가공하는 역할이다. 티타늄 원통에 불과한 자재가 차세대 립 엔진 부품으로 완성되기까지 거치는 공정은 약 45단계. 100kg에 이르는 부품을 사람이 직접 옮길 때보다 40% 이상 빠르고 안전하게 작업이 이뤄진다. 실제 작업장 내부 온도를 관리하는 것도 인공지능의 몫이다. 21도에서 단 2도라도 온도가 벗어나면 금속 소재가 미세하게 팽창해 정밀가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상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 사업장장은 “항공기 엔진은 14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뎌야 하는 니켈 ·티타늄처럼 가공이 어려운 소재를 정밀 가공해야 하고, 제품에 따라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인 1미크론(1000분의 1mm) 단위 오차까지 관리한다”며 “이를 위해 각 공정에서는 장비마다 최대 1초에 20회 이상의 데이터를 측정하고 수집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의 P&W로부터 40년에 걸쳐 약 17억 달러(약 1조 9000억원) 규모의 첨단 항공기 엔진부품 공급권을 따낸 것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래 전략에 기폭제가 됐다. 최근 5년 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GE, P&W, 롤스로이스 등 글로벌 3대 항공엔진 업체로부터 수주한 금액만 21조원에 이른다.

유동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사업본부장은 “일체식 로터 블레이드(IBR)와 고압터빈 디스크 등 부가가치가 높은 회전체 부품을 본격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첨단 생산설비를 구축해 이뤄낸 대규모 수주”라고 평가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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