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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우리 곁의 성자들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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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등촌로엔 ‘천사’가 있다. 밤 11시나 새벽 2시 등 심야에 주로 나타난다. 그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종이상자나 폐지 등을 모은다. 얼핏 보면 여느 폐지 줍는 노인의 모습이다.

한 달 꼬박 폐지를 팔아 모아도 30만원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그는 다달이 30만원을 채워 사회복지시설 음성 꽃동네에 기부한다. 2014년부터 1600여만원을 기부했다. 폐지 줍는 천사, 김종원(81·사진) 할아버지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힘닿을 때가지 이 일을 하고 싶다.”

43년 전 1976년 9월 10일 충북 음성 금왕읍 무극천 다리에도 자신의 키만 한 걸망을 진 60대 천사가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 펑퍼짐한 옷, 작달막한 그는 영락없는 걸인의 모습이다. 그는 날마다 음성지역 이곳저곳을 누비며 동냥한 마른 찬과 거친 밥을 다리 아래 움막에 있던 열여덟 생명에게 전했다.

“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다리와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있잖아요.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거지 성자’로 불린 고 최귀동(1909~1990) 할아버지의 이 말을 김종원 할아버지가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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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할아버지의 선행은 또 다른 결실로 이어졌다. 최 할아버지의 헌신에 감명받은 당시 음성 무극천주교회 주임 오웅진 신부가 2달여 만에 걸인들을 위해 지은 벽돌집이 지금 국내 최대 복지시설로 성장한 꽃동네의 출발이 되었다.

최 할아버지는 평생 걸인을 돌봤으며, 1986년 한국가톨릭 대상 사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받은 상금을 꽃동네에 내놨고, 세인들은 그를 ‘작은 예수’, ‘거지 성자’라고 불렀다.

서울 등촌로에서 폐지를 줍는 천사 김씨는 최 할아버지의 봉사 정신을 기려 만든 ‘최귀동 인류애 봉사대상’ 8회 수상자로 뽑혔다. 김씨는 22일 음성 품바 축제 개막일에 상을 받는다. 그는 2014년 음성 꽃동네에 들렀다가 오웅진 신부한테서 고 최귀동 할아버지의 봉사 일화를 듣고 기부를 시작했다.

‘거지 성자’ 최 할아버지의 봉사 뜻을 널리 알리려고 음성군 등이 2000년 만든 품바 축제는 올해 20돌을 맞았다. 뜻있는 행사도 많다. 최 할아버지의 숨결이 담긴 음성 꽃동네는 서울·인천 등 전국의 노숙인 1004명을 축제 때 초청한다. 경기도자원봉사자협의회원들이 일일 도우미로 나서 이들을 돌보고, 무료 법률·건강·취업 상담도 이어진다.

품바 축제답게 익살·해학·재미를 곁들인 행사도 많다. 음성지역 읍면 9곳은 품바 움막 짓기 경연을 하고, 전국의 축제·행사장에서 ‘품바 공연’을 하는 품바 예인 왕중왕전도 있다. 품바 비빔밥 조리법 경연, 글로벌 품바 래퍼 경연도 눈길을 끈다. 강호정 음성군 문화체육과 주무관은 “품바 음식의 대명사인 비빔밥 경연에서 우수작이 나오면 전주비빔밥에 견줄 수 있는 대표 음식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어쩌면 랩·힙합의 뿌리가 각설이 타령일 수 있는 만큼 래퍼 경연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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