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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낮잠만 자는 경비원’ 악플에, 근무 현실 알렸더니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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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비정규직 노동자·학생 연대 ‘모닥불’ 운영위원장 김민석씨

학교 무인 경비체제 도입·경비원 사망 계기 ‘상시 소통기구’로

축제 땐 홍보 부스도…“경비노동자 감소, 학생들에 도움 안돼”

경향신문

홍익대 노동자·학생 연대체 ‘모닥불’이 지난 17일 축제기간을 맞아 학생들에게 모임 홍보를 하고 있다. 모닥불 운영위원장 김민석씨(왼쪽에서 두번째)는 “모닥불은 학내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라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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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는 지난해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 보안업체 계약을 맺고 학교 건물 일부의 출입통제·방범 시스템을 무인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 경비인력을 해고하진 않았지만, 정년퇴직 인원을 충원하지도 않았다.

노동자와 학생들은 지난달 11일 ‘학교 측이 경비인력을 감축하려 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지난달 27일 오전 19년간 홍익대 경비노동자로 일해온 선모씨(60)가 출근길 학교 정문에서 쓰러져 세상을 떴다. 학생들은 선씨가 쓰러진 자리에 분향소를 차리고 포스트잇으로 추모의 글을 올렸다.

기자회견장과 분향소, 두 자리에 모두 ‘모닥불’이 있었다. 모닥불은 올해 3월 홍대에 꾸려진 노동자·학생 연대체다. 모닥불이라는 이름은 ‘학교·학생·학내 노동자들이 둘러앉아 연대와 정을 나누는 공동체’라는 의미가 있으며, 모닥불에선 20여명이 활동 중이다.

홍익대는 2011년 청소·경비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를 겪었다. 당시 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이 연대했지만, 상시적인 모임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모닥불은 학생과 학내 노동자가 수시로 소통하는 기구를 꿈꾼다. 모닥불 운영위원장 김민석씨(22)를 지난 17일 홍대에서 만났다.

“학교 열람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면서 학내 경비원들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걸 알았어요. 일하는 곳에 에어컨도 없고 휴게시간도 유동적이었어요. 어느 날 경비원 형님이 ‘투쟁’ 포스터를 붙이시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죠.”

김씨와 모닥불 구성원들은 학교 축제기간에 맞춰 홍보 부스를 만들었다. 부스에는 직접 만든 모닥불 배지와 스티커 등 각종 기념품을 내놓았다.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기념품 디자인에도 신경 썼다. 김씨는 “복고 감성으로 ‘힙’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8년부터 교내 24시간 열람실 경비소초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 열람실 환경 정리, 온도 체크, 외부인 출입 감시를 하고 ‘학생증을 두고 왔는데 문 좀 열어달라’는 이들의 소소한 부탁도 들어줬다. 경비노동자들과 돌아가며 업무 교대를 했다. 평소엔 접하지 못했던 학내 구성원과도 교류했다.

김씨는 “경비노동자가 사라지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열람실에서 갑자기 학생이 다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경비원이 없으면 대처하기 힘들다”고 했다. 지금 같은 속도로 무인 경비소초가 늘어나면, 10년 안에 학내 경비원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모닥불은 기자회견과 분향소 설치에 이어 교내 노동자들과의 연대 활동을 이어냈다. 김씨는 “분향소는 학교 측이 부담스러워해 3일만 설치하고 철거하기로 했는데, 추모 포스트잇이 746개나 붙었다”고 말했다. 19년간 함께한 노동자의 죽음을 3일간 분향소 설치만으로 마무리하긴 아쉽다고 생각해 지난 7일 추모 대자보를 붙였다. 김씨는 “다음날 학교 직원이 대자보를 뗐다. 이에 항의하는 대자보를 다시 붙였지만 학교 측은 말이 없다”고 했다.

이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연대 단체 10여곳의 지지 대자보도 함께 게시됐다.

김씨는 모닥불이 학내 모든 사항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최근엔 대학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에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경비원들 낮에 잠만 잔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댓글에 항의하기보다 이 사실을 노조에 알려 직무교육을 다시 하게 했다. 24시간 근무하는 경비원들이 낮에 휴게시간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커뮤니티에 올리자 비판 댓글이 사라졌다. 김씨는 “모닥불은 극렬한 운동단체는 아니다. 시위나 행진보다는 학생들에게 밀접히 다가갈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노동자들에게도 고마움의 인사를 보냈다. “스티커랑 배지를 파는데, 일하시는 분들이 와서 정말 많이 사주셨어요. 경비·미화 노동자 분들 만날 때 ‘저 모닥불 활동해요’라고 말하면 웃으면서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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