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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보험 처리 기피하는 대리기사 “사고 2번 내면 실직”…관련 법안은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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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험 처리 기피하는 대리기사…손 놓고 있는 정부

대리운전기사 김모씨(59)는 2017년 8월 밤 서울 금천구 시흥대교 부근에서 고급 스포츠카의 범퍼에 흠집을 냈다. 며칠 뒤 차주는 “수리비 150만원이 나왔으니 면책금(자기부담금)을 내라”고 했다. 대리운전자보험에 가입한 김씨에게 부과된 면책금은 30만원이었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콜’ 6~8개를 받으며 일하는 김씨의 하루 수입은 약 10만원이다. 김씨는 수차례 차주의 전화를 받았지만 “안 내겠다”며 버텼다. 대리운전중개업체까지 나서 일을 못하게 하겠다고 압박하자 결국 김씨는 면책금을 냈다. 김씨는 “업체에 매달 보험료만 약 20만원을 내는데 사고가 나면 기사만 책임져야 하니 억울하다”고 했다.

“기사만 덤터기 억울”

면책금·보험료 할증 부담

갱신 못하면 일자리 잃어

버티거나 잠적, 개인 합의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대리기사들에겐 사고 때 나오는 면책금, 보험료 할증이 큰 부담이다. 사고 기록이 쌓이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크다. 사고를 낸 대리기사가 제대로 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버티거나 잠적하는 사례도 이어진다. 정부는 대리운전 법령이 없어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리기사가 사고 보험처리를 피하는 일은 흔하다.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대리기사 ㄱ씨가 운전하던 조모씨(36)의 차량이 고급 외제차를 들이받았다. ㄱ씨는 신원을 밝히지 않고 도망쳤다. 당시 술에 취한 조씨는 ㄱ씨를 붙잡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리기사가 사고를 낸 뒤 연락을 안 받거나 보험접수를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리기사가 사고를 내면 차주가 의무 가입한 책임보험이 일단 피해자에게 보상한다. 한도를 넘는 금액은 대리기사의 대리운전자보험이 부담한다. 차주도 대리기사에게 손해 보상을 요구한다. 이때 보험회사에서 대리기사에게 면책금을 부과한다. 보험 보상한도를 넘는 손해는 대리기사 개인의 몫이다. 사고로 사람이 다쳤다면 보험료가 할증된다.

대리기사는 면책금보다 보험 갱신 자격을 잃는 것이 더 무섭다. 업체에 소속해 영업하려면 보험 가입이 필수다. 사고로 보험 자격을 상실하면 일자리도 잃는다. 이상국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본부장은 “1년에 2회 이상 사고를 내면 보험을 갱신할 때 문제가 생겨 아예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며 “가장 적게 나온 사고 보험금을 보험사에 물어주고 사고 기록을 없애는 이른바 ‘대환’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리기사 대부분은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2015년 11월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이동노동 종사자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리기사가 하루 평균 9시간 일하며 버는 평균 수입은 6만1850원이었다. 업체는 수입의 20%가량인 기본 중개 수수료와 보험료를 챙긴다. 기사마다 평균 3개 사용하는 ‘콜 프로그램’ 사용료, 통신비, 교통비, 식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대리기사의 월 순수입은 151만8000원 정도다.

“법령 자체가 없어서”

‘대리운전업법’ 3년째 계류

중개업체와 표준계약 법안

국토부 “공정위와 협의 중”


정부는 관련 법령이 없다는 이유로 대리운전 사고 문제를 사실상 방치한다. 대리기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차주 권익을 보호하는 ‘대리운전업법 제정안’이 2016년 8월 발의됐지만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에는 대리운전자격증의 발급, 사고 손해배상 보장, 업체의 부당행위 처벌, 대리운전연합회 설립 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리기사와 중개업체의 표준 계약을 정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허진무·김희진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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