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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북 유엔 대사 "미국, 어니스트호 즉각 반환해야"...북미대화 악재로 등장한 어니스트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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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UN 웹TV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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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압류 문제가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의 악재로 등장했다. 미국의 ‘정당한 대북 제재 이행 조치’ 입장에 대해 북한은 주권을 무시하는 일방적 강탈이라며 반환을 요구하는 등 연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의 문은 열려있으며 유엔의 대북 제재는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강조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2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어니스트호 압류는 “불법 무도한 행위”라며 즉각 반환을 요구했다. 그는 “미국은 불법적이고 무도한 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이번 사건은 북한(DPRK)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 정책의 산물로서 우리는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니스트호는 공화국의 자산이자 우리의 주권이 완전히 행사되는 영역”이라면서 “미국은 극악한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 하고, 지체 없이 화물선을 반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모든 행동을 주의깊게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또 “미국의 행위는 최대의 압박을 통해 우리를 굴복시키려는 계산의 연장선에 있다”면서 “새로운 양자관계 구축을 약속한 6·12 북·미 공동성명의 희망과 정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미국의 화물선 압류를 비난하는 서한을 발송한 것을 거론하면서 “유엔 사무총장이 서한을 유엔총회 문서로 회람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겠다고 했으나 어니스트호 반환이 북·미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인지부터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까지 나오자 “오늘은 어니스트호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한 기자회견”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그는 모든 질문들에 대한 총괄 답변 형식으로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인정하지도 수용하지도 않는다”면서 미국의 압류조치가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재차 비난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은 미국에 달려있다”면서 “우리는 미국의 반응을 예리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약 15분간 영어로 진행됐다. 북한이 유엔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도, 사전에 예고한 것도 이례적인 행보라는 평가다.

양측의 대치는 미국이 지난 9일 북한 석탄을 불법 운송하는 데 사용돼 국제 제재를 위반했다며 인도네시아에 억류 중이던 어니스트호 압류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지난 11일 어니스트호를 미국 영해로 이송했다. 미국이 국제 제재 위반을 이유로 북한의 두 번째로 큰 화물선을 압류·몰수에 나선 것이다.

북한은 지난 1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을 공약한 6·12 북·미 공동성명의 기본정신을 부정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17일 유엔에 항의 서한을 보내며 여론전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김 대사 명의로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의 어니스트호 압류는 “불법무도한 강탈행위”라고 비판하고 사무총장의 긴급조치를 촉구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20일 서한 접수 사실을 확인하며 “북한의 요청에 따라 서한을 안전보장이사회 문서로 회람시켰다”고 밝혔다. 또 서한은 “대북 제재와 제재 이행을 위해 취해진 조치와 관련된 것”이라며 “안보리 이사국들이 다뤄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안보리 이사국들 간의 논의를 예고한 만큼 어니스트호 문제는 대북 제재의 수위와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선박 압류 사태를 계기로 대북 제재를 둘러싼 북·미 간 대치가 심화된다면 비핵화 협상 재개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더해 또 하나의 악재가 등장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자칫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했던 6자회담을 좌초시킨 방코델타아시아 사태와 유사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정부는 일단 북한의 비난에 대한 대응을 자제하며 로우키를 유지하고 있다. 어니스트호 압류와 몰수 방침에는 변함이 없으며, 북한의 추가 대응을 유발하는 악순환은 피하겠다는 계산이다.

국무부는 북한의 반환 요구에 즉답을 피하며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 유지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북·미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김 대사의 기자회견에 대한 경향신문의 입장 문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그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하겠다는 약속을 실행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서 “미국은 이러한 목표를 향한 추가 진전을 이뤄내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 협상을 하는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또 “유엔 안보리에 의해 결정된 대로 국제적 제재는 유지되며 모든 유엔 회원국들에 의해 이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어니스트호 압류와 몰수 추진이란 기존 정책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하면서 제재 유지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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