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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런정페이 “위기 순간 美 기업 정의와 양심 보여줘...눈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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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창업자 인터뷰 "욕할 대상은 美 기업 아닌 정치인"...적진 분열 포석 지적도
스마트폰 담당 부총재 "안드로이드앱 가동할 수 있는 자체 OS 올 가을 출시"
구글, 美 정부 유예조치에 안드로이드 서비스 당분간 화웨이에 제공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이자 스마트폰업체인 화웨이(華爲)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최고경영자(CEO)가 21일 "위기의 순간에 미국 기업이 정의와 양심을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공급할 상품 준비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소개하면서 "욕하려면 미국 정치인에게 하라. 미국 기업에는 하지말라"고도 했다. 미국의 정경을 분리해 화력(火力)을 미국 정치인에만 집중하면서 미국내 분열을 부추기는 전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런정페이 CEO는 이날 선전 본사에서 20여개 중국 매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그저께(19일) 새벽 2, 3시쯤 쉬즈쥔(徐直軍, 화웨이 부총재)이 전화를 걸어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부품 공급준비에 노력하고 있다는 현황을 보고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눈물이 흘렀다"며 ‘도에 들어맞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도에 어긋나면 도와주는 사람이 적다’(得道多助, 失道寡助)는 맹자(孟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1970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용한 이후 자주 사용되는 이 표현을 쓴 것은 미국 기업은 정의로운 데 미국 정치인이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불매 등 미국 기업을 적대시하는 민족주의 정서 선동은 안된다고 분명히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

조선일보

중국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가 4개월만에 다시 선전 본사에서 중국 매체들과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국 정치인들이 화웨이를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CCTV


런정페이와 이날 별도로 단독 인터뷰도 가진 중국 관영 CCTV는 평론에서 "우리의 적은 미국 기업이나 미국인이 아니고 미국 정치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화웨이의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런정페이는 과거 성공요인으로 특정 타깃에만 화력을 집중한 것을 꼽을 만큼 한 곳만 공격해야한다는 것을 자주 얘기해왔다. 런정페이는 이날 "미국 정치인들이 화웨이를 과소평가했다"고도 했다.

런정페이는 "화웨이의 자문회사 대부분은 IBM 같은 미국 기업"이라며 "30여년간 화웨이가 어떤 길을 갈 지 가르치고 성장에 매우 많은 공헌을 한 미국 기업들에 대해 매우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에 안드로이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해 위기론을 부추긴 구글에 대해서도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런정페이는 "구글은 매우 좋은 회사이고 책임감이 강한 회사"라고 평했다. 이어 "구글이 미국 정부에 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설득 중이고 화웨이도 변통할 수 있는 방안을 진행중이다"며 "구제조치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구글이 미국 정부의 화웨이 거래 제한 조치에 따라 일방적으로 안드로이드 서비스를 중단한 게 아니라 나름 화웨이와 대책을 협의 중임을 공개한 것이다.

화웨이 스마트폰 사업을 이끌고 있는 쉬즈쥔 부총재는 이날 저녁 중국 소셜미디어에 "빠르면 올 가을, 늦어도 내년 봄에는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OS)를 내놓을 것"이라며 안드로이드를 대체할 자체 OS의 출시 시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고 베이징청년보 등이 전했다. 쉬 부총재는 "화웨이의 OS는 휴대폰, 컴퓨터, 태블릿PC, TV, 자동차, 웨어러블기기에 모두 통할 수 있고, 모든 안드로이드 앱과 웹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쉬 부총재는 "구글과의 '단절'이 화웨이를 수호지 속에 나오는 호걸들의 근거지인 '양산(梁山)'으로 밀려나게 했지만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는 상하이교통대와 공동으로 리눅스(Linux)를 기반으로 한 독자 OS인 훙멍(鴻蒙)을 개발해왔다. 훙멍은 중국의 신화 속에서 세상이 탄생하기 전 혼돈 상태 속의 신비로운 힘을 뜻하는 말이다.

화웨이는 이날 런던에서 독자 개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치린(麒麟·기린)980을 탑재한 아너20 시리즈 신제품을 새로 공개하면서 정상 영업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화웨이가 안드로이드 대신 독자 OS를 사용한다고 해도 중국을 제외한 유럽, 동남아, 남미 등 화웨이의 주요 해외 시장에서 받는 타격을 쉽게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여전하다.

한편 구글은 화웨이에 안드로이드와 구글 서비스에 대한 기술적 지원 중단을 보류했다고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이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화웨이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당분간 업데이트 등의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조치는 미 상무부가 화웨이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를 완화해 90일간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있는 임시면허를 발급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미 정부는 다만 임시 거래 허용의 범위를 기존 네트워크 보수·점검이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제공 등 기존 고객에 대한 지원으로 한정했다. 새 제품 제조를 위한 부품 구매 등은 불허한 것으로 중국에 양보했다기 보다는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순조롭게 거래를 정리할 시간을 줬다는 시각도 나온다.

구글은 "전화기를 최신의 상태로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며, 이번 임시면허는 우리가 앞으로 90일간 기존 모델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보안 패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 16일 화웨이와 화웨이의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리고 이들이 미국 기업과 거래할 때 미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구글을 비롯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은 잇따라 화웨이에 핵심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칩 등의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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