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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리뷰]한국 사회의 우스꽝스러운 어두움 그린 ‘희비극’…‘봉테일’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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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영화 ‘기생충’

경향신문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기택네는 식구들이 모두 ‘백수’로 피자 박스 접기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아들 기우(최우식)와 아빠 기택(송강호), 엄마 충숙(장혜진), 딸 기정(박소담·왼쪽부터)이 반지하집에 함께 있는 영화 중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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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보안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봉준호 감독(50)의 영화 <기생충>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기생충>은 커지는 빈부격차로 양극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 계층·계급 갈등, 부유층의 허영과 위선·무관심, 개인주의와 공동체 의식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봉 감독 특유의 매우 계산적이고 영리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로, 봉 감독은 단편 <지리멸렬>(1994)부터 <옥자>(2017)까지 자신의 전작 속 스타일과 장점을 <기생충>에 가득 담았다. 또 코미디·스릴러·드라마 등 각종 장르적 요소를 적절하게 잘 버무려 대중성도 갖췄다. 킥킥거리며 웃게 하다 심장을 조이는 긴장감을 주는가 하면 가슴 한쪽에 찡한 울림도 준다.

영화는 기택(송강호)의 집에서 시작한다. 기택을 포함해 아내 충숙(장혜진), 아들 기우(최우식), 딸 기정(박소담) 등 4명 모두 백수인 기택 가족은 반지하집에서 산다. 기택은 치킨, 대만 카스텔라 등 각종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대리운전, 발레파킹 등도 했지만 휴대전화 요금을 낼 돈도 없어 윗집에서 사용하는 와이파이를 몰래 사용한다. 윗집에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바꾸자 비상이 걸린다. 인근 카페의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을 찾기 위해 아들 기우는 집안 곳곳을 누빈다. 이때 기택의 가족이 사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소개된다.

빈부격차와 계층 간 갈등

코미디·스릴러 등 버무려

영리한 연출로 표현해내

공간 활용한 메타포 탁월

‘셀프 오마주’ 찾는 재미도


피자 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로 식구 4명 모두가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중 기우의 친구 명문대생이 찾아온다.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가게 되자 자신이 하던 고2 영어 고액 과외를 기우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다. 기우는 대학에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군 입대 전 재수, 전역 후 재수 등 총 4번의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베테랑 수험생’이다. 미대에 떨어지고 백수로 지내는 기정의 도움으로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기우는 박 사장(이선균) 집으로 향한다.

박 사장 가족 역시 아내 연교(조여정), 딸 다혜(정지소), 아들 다송(정현준)까지 4명이다. 연교는 과외교사로 온 기우를 못 미더워한다. 그러나 시범 수업 중 기우의 교육 철학과 기세에 반해 딸의 과외를 맡긴다. 연교는 10살짜리 아들이 미술에 천재적 소질이 있다고 기우에게 자랑하고, 기우는 자신의 여동생인 기정을 지인인 것처럼 연교에게 소개해 면접을 보게 한다.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아는 정보에 높은 신뢰를 보인 연교는 기정에게 아들의 미술 과외도 맡긴다. 기우의 과외로 시작된 기택 가족과 박 사장 가족의 인연은 점점 깊어진다.

좁은 골목·오르막길·터널·지하실·하수구 등 전작에서 공간을 연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온 봉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공간을 잘 활용한다. 우선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가족이 지내는 공간이 돋보인다. 기택의 집은 반지하라 거실에 있는 유일한 창으로는 주로 행인들의 발·다리가 보이고, 밤에는 취객들의 노상방뇨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꼽등이 등 벌레도 자주 출몰하는 기택의 집에 비해 글로벌 IT 기업 최고경영자인 박 사장의 집은 세계적인 유명 건축가가 지은 집이다. 4명이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기택 집의 거실과 달리 박 사장 집 거실은 수십명이 누워도 공간이 충분하고, 넓은 창으로는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이 보인다. 특히 담 높이나 상하가 있는 계단을 두 가족이 대표하는 계층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썼다.

봉 감독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슬로모션도 자주 쓰인다. 여럿이 서로 뒤엉키는 과정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고, 이 상황과는 안 어울릴 것 같은 클래식 선율을 더해 화면 속 인물과 상황의 우스꽝스러움을 극대화한다. 전체적인 연출뿐 아니라 <플란다스의 개>(2000) 속 우비 쓴 인물, <살인의 추억>(2003) 속 난장판 가운데 울리는 전화벨, <괴물>(2006) 속 잠자는 괴물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도주하는 장면 등 다양한 장면과 컷에서 봉 감독 전작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전체에 셀프 오마주가 가득해 봉 감독 영화 팬이라면 이스터 에그(숨겨놓은 메시지)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칸 |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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