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제이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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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오전 5시경 수평선 위로 해가 서서히 솟아올랐다. 사방이 조금씩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갑판 위에서 일출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언어는 다르지만 감탄사는 엇비슷했다. 전날 밤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를 떠난 크루즈선 ‘코스타 네오로만티카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동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지난달 16일 부산을 떠난 네오로만티카호는 일본 돗토리(鳥取)현 사카이미나토(境港)시와 가나자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지난달 21일 속초항으로 돌아왔다. 롯데그룹 계열 여행사인 롯데제이티비가 운영하는 5박 6일 일정의 크루즈 상품이다. 3개 도시를 여행하지만 실제로는 95시간가량을 크루즈선에서 보내는 바다 위 호캉스(호텔+바캉스) 여행이다. 5만7000t급 네오로만티카호에는 헬스클럽 수영장 레스토랑 등이 잘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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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는 시종일관 활력이 넘쳤다. 대형 공연장에서는 가수와 댄서의 공연이 이어지면서 하루 종일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주요 고객인 60, 70대의 얼굴에선 웃음이 넘쳐났다. 셋째 날 오후 4시경 갑판 위에 마련한 특설 링에서는 복싱시합이 열렸다. 외국인 선수들이 나와 열띤 경기를 펼쳤다. 피와 땀이 흐르는 두 육체를 몇 미터 앞에서 지켜보는 여객들의 눈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배 위에서는 모두가 시간을 거슬러 소년이 된 것 같았다. 한국인 승객 A 씨(60)는 “크루즈선에서 춤을 추기 위해 무도복까지 마련해 왔다”며 “5박 6일간 20대가 된 것처럼 신나게 즐겼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헬스장에서 트레드밀(러닝머신)을 타던 B 씨(27)는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내려 정신없이 둘러보는 것과는 달리 바다 한가운데에서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는 것 같아 좋다”며 “해상에서는 휴대전화도 되지 않아 디지털 디톡스(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중독을 해소하는 것)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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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패키지 여행으로는 쉽게 찾지 못하던 곳을 기항지로 들를 수 있다는 것도 이번 크루즈의 묘미였다. 사카이미나토에서는 다른 일본의 대도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주거지역의 고즈넉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요괴만화의 거장인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의 고향이어서인지 도시 곳곳에서 그의 작품 속 요괴들이 그려진 건물을 찾아볼 수 있다. 제2의 교토(京都)라 불리는 가나자와에는 옛 일본 가옥이 그대로 남아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점인 러시아 최대 군항(軍港)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아시아에서 느낄 수 없는 유럽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태평양극동함대 요새와 혁명광장 등에선 역동적인 러시아 문화가 엿보인다.
가나자와·사카이미나토·블라디보스토크=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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