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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다시 더 낫게 실패하기 위한 ‘21세기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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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좌파 학술대회 맑스코뮤날레 개최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눈길

레닌주의 극복한 대안사회론 제시

마르크스주의 생태학 연구 동향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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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등 공산권의 붕괴 이후 한동안 ‘마르크스주의 또한 파산했다’는 의식이 득세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인간의 예측을 넘어섰다. 오히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현재까지 가치론, 대안사회론, 철학, 페미니즘, 생태주의 등 수많은 영역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의 실패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제9회 맑스코뮤날레가 24~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열린다. 국내 최대 진보좌파 학술문화행사인 맑스코뮤날레는 2년마다 열려왔으며, 올해도 30여개의 주관단체가 생태, 페미니즘, 노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세션들을 개최한다. 대회를 앞두고 메인 세션과 집행위원회 특별 세션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을 모은 <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갈무리)도 출간됐다.

한겨레

여러 세션 중에서 25~26일 세 차례에 걸쳐 경상대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포스트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연구팀이 주관하는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 사회사상 연구의 혁신’ 세션이 눈길을 끈다.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대안사회론 연구의 혁신: 어소시에이션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어소시에이션(조합) 개념을 열쇳말로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읽어가며 그의 대안사회론이 초·중·후기에 걸쳐 진화해가는 과정을 밝혔다.

1990년대 이후 다바타 미노루와 오타니 데이노스케 등 일본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은 마르크스 대안사회론의 핵심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즉 어소시에이션에 있음을 입증한 ‘어소시에이션론적 전회’를 이뤄냈다. 이것은 새로 출간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메가) 등을 포함한 마르크스 텍스트에 대한 엄밀한 문헌고증학적 연구의 기반 위에서 거둔 성과였다. 어소시에이션이란 공동체(가족), 위계(국가), 시장과 같은 다른 인간관계의 형태와 달리 “개인들이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 의지에 기초하여 힘과 재화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생산하는 행위 및 그 행위에 의해 생산되는 사회”(다바타)를 말한다.

어소시에이션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의 대안사회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사회론과 극명하게 대립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기초했던, 주로 <공산주의 선언>에서 드러나는 초기 마르크스의 대안사회론이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중앙집권적 국가관을 견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850년대 이후 경제학 비판 연구의 심화와 1871년 파리 코뮌의 영향으로, 중·후기의 마르크스는 초기와 이론적으로 단절하고 “협동조합 연합체를 중심으로 한 협의적 참여계획과 생산 당사자들의 자주적 경영관리를 구상했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한편, 지난해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두번째테제·근간)란 저서로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저작에 주어지는 아이작 도이처상(영국)을 수상한 사이토 고헤이의 발표도 관심을 끈다. 32살의 나이로 일본 오사카시립대학 경제학부 교수직과 메가 편집위원을 맡은 그가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는 ‘소련 붕괴 후 마르크스의 에콜로지의 ‘재발견’’이란 제목의 발표문에서, 그동안 ‘마르크스주의에는 생태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무한한 발전을 무비판적으로 찬미하는 프로메테우스주의자다’라고 알려져 온 오해를 바로잡는다.

심각한 환경 파괴가 이루어졌던 소련이 붕괴한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생태주의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했다. 1990년대 초 테드 벤튼 같은 1세대 생태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안에선 생태이론을 전개할 도구를 찾을 수 없기에 외부 이론으로부터 주입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마르크스의 생태학>을 쓴 존 벨라미 포스터 등 2세대 생태사회주의자들이 마르크스 이론을 기반으로 한 생태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포스터는 마르크스가 “물질대사의 균열”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정식화한 대목을 주목했다. 자연자원의 고갈에 당면했을 때 자본은 이를 시장 개척이나 기술 개발로 극복하려고 하지만, 자연이 자본에 더욱 깊이 포섭될 뿐 물질대사의 균열은 복원하지 못하고 지연시키기만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의 발전으로 인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처럼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생태사회주의가 인류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밝힐 정도로 상황은 반전됐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 출간되고 있는 메가는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의 근거를 더욱 풍성하게 제공해준다고 사이토는 밝힌다. 마르크스가 만년에 작성한 방대한 양의 발췌노트에서, 그가 생태학적 작업을 진행하며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브루노 라투르나 필립스 리 등이 견지하는 ‘기술 발전으로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를 두고, 사이토는 “사회운동 없이 국가 주도의 기술혁신을 기대하는 정치주의는 공통적인 것(commons)에 대한 민주주의적 관리와 동떨어진, 1%에 의한 과점적 지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이 세션에서 발표될 논문들은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이 간행하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실릴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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