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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토끼와 거북이의 재시합, 구경 한번 해 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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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이솝 이야기와

전통화풍 백묘화 만나

경계를 넘는 익살 한판



한겨레

토선생 거선생
박정섭 글, 이육남 그림/사계절·1만3000원

아니 그래, 토끼와 거북이 하면 무슨 생각이 드나 그려? 둘이 경주를 했는데 우쭐하던 토끼가 잠들었다 그만 거북이에게 진 이야기? 아니면 용왕님 병을 고치겠다고 토끼 간을 구하러 뭍에 올라온 거북이 이야기? 내 그럴 줄 알았네. 열이면 열, 둘 중 하나지.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 ‘수궁전’의 주인공은 거북이가 아니라 자라라는 건 알고 있는가.

‘토끼와 거북이’는 먼 나라의 이솝 선생이 기록한 우화, ‘수궁전’은 우리나라 고대 소설인데 묘하게 닮은 데가 있지 않나? 그렇지, 거북이(자라)는 우직한데 토끼는 재바른 게 좀 얄미운 구석이 있다 이거야. 물론 ‘토끼와 거북이’에선 성실한 거북이가 거만한 토끼에게 이겼지만, ‘수궁전’에선 용궁에 갔다 죽을 뻔한 토끼가 “간을 두고 왔다”는 꾀를 발휘해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말이지. 그런데 이솝 선생 뒷이야기에 우리나라 전통 화풍이 접목된 동화책이 있다면 어쩌겠는가? 어째, 보고 싶지 않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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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선생 거선생>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새 그림책이다. 날쌘 토끼가 거북이에게 졌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귀가 늘어지고 혼잣말도 늘어 가던” 토선생은 설욕을 위해 꾀를 내어 거선생과 재시합을 성사시킨다. 이 시합 전부터 결말까지의 전체 이야기를 우리네 풍속화의 맛을 살린 백묘화(색채나 음영을 가하지 않고 먹선의 강약, 억양, 굵기만으로 완결시킨 그림)로 살렸다. 판을 벌인 두 선생의 배경으로 김홍도의 ‘씨름’이 깔리고, 경주 코스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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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을 넘나드는 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변사의 구성진 입담처럼 시작하는 이야기는 동화 저편과 현실 이편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수시로 말을 걸어온다. 구덩이에 빠진 토선생이 “작가 양반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며 따지고, 거선생과 함께 위기에 몰리자 “독자 양반, 우리 좀 살려주시게” 하고 하소연하는 식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동물 구경꾼들이나 거선생을 꼬드기러 토선생이 5세대(5G) 스마트폰이니 홍삼 따위 선물을 가져오는 장면도 재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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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실험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은 글쓴이와 그린이 두 작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다. 글을 쓴 박정섭 작가는 <감기 걸린 물고기>로 사랑받은 그림책 작가인데 이번에 자신의 그림 없이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 보았다. 이육남 작가는 동화 그림책으로는 생소한 화법인 백묘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저러나 둘이 다시 맞붙은 결말은 어찌 되었냐고? 어허, 그거야 동화책을 보면 될 일 아닌가? 내 하나는 귀띔해 줌세.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재, 동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구성이 결말에서라고 달라지지 않았다고. 기대해도 좋을 걸세.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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