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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누가 날 죽였지?’ 자신의 살인범을 쫓는 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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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죽음 1,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열린책들·각 권 1만4000원

베르나르 베르베르(사진)의 신작 <죽음>은 죽은 이의 혼령이 자신을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사후 세계를 탐험하는 영계 비행자들을 등장시킨 소설 <타나토노트>의 작가답게 베르베르는 생과 사의 엄연한 경계 따위 별것 아니라는 투로 예사롭게 넘나든다.

‘누가 날 죽였지?’

<죽음>은 소설가인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가 이런 문장을 떠올리며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독자의 관심을 끌 충격적이고 독창적인 첫 문장으로 이보다 더 나은 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가브리엘이 새로 쓰려는 소설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그를 주인공 삼은 베르베르 소설 <죽음>의 출발이기도 하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매개하는 영매 뤼시 필리피니가 가브리엘의 수사를 돕는다. 뤼시는 가브리엘이 알려준 용의자들을 찾아가 심문하면서 수사망을 좁혀 가고, 가브리엘은 뤼시가 사랑하는 남자 사미 다우디의 실종 사건에 얽힌 비밀을 추적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각자의 능력과 한계 안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두 사건의 진실을 좇는 과정이 소설의 기둥 줄거리를 이루는 가운데, 일찍이 베르베르가 냈던 책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항목들이 수시로 삽입되어 서사를 보완한다. ‘엉뚱해서 유명한 죽음들’ ‘영혼의 무게’ ‘공식 증인이 된 유령’ ‘죽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계’ 등이 그 항목들의 일부다.

주인공인 가브리엘 웰즈는 여러 모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자신을 떠오르게 한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주간지 기자로 출발해 작가가 되었다는 이력이 그를 빼닮았다. 장르문학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프랑스 문단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고스란히 베르베르 자신의 그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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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문체가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의 책에는 애당초 문체라는 게 존재하지 않죠. 웰즈는 내가 아는 최악의 작가예요. 우리 업계의 수치죠.”

“무아지가 좋아하는 문학은 근본적으로 화장술이나 다름없어요. 주름을 가리고 여드름을 덮기 위해 하는 화장이라는 말이죠. 우리는 보통 내용이 지닌 약점을 가리고 싶을 때 형식을 부각시키죠.”

생전에 출연한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본격문학’을 대표하는 평론가 겸 소설가 장 무아지와 가브리엘은 이런 설전을 주고받는다.

“웰즈는 하위 문학의 기수일 뿐”이라는 무아지의 비난에 가브리엘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문학의 다양성”이라는 말로 응수한다. 소설 말미에 가면 ‘공식’ 문학 군대와 상상력 문학 군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혼령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야기꾼들의 조상이라 할 최초의 ‘드루이드’ 투안이 싸움을 중재하며 하는 이런 말에 베르베르 자신의 문학관이 담겼을 테다.

“우리는 다 같은 존재들일세. 이야기꾼들이지.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이란 구분은 애당초 없네. 그저 상상력의 문학에는 문체와 심리 묘사가, 문체를 중시하는 문학에는 상상력과 환상이 필요한 것뿐일세. 내용과 형식은 상반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니까.”

그나저나, 가브리엘을 죽인 범인은 누구? 그리고 사미 다우디는 어디에? 허를 찌르는 범인의 정체, 그리고 실종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는 재미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도록 하자.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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