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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9 (수)

[더뉴스-더넓은세계] 장기집권 개헌 통과시킨 '이집트판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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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노종면 앵커, 박상연 앵커

■ 출연 : 박원곤 /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의 역사는 여러모로 우리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수천년 동안 중국과 북방세력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했던 것처럼 이집트 역시 기원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국들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려왔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무바라크 독재 정권이 무너졌지만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가 철권통치로 사실상의 영구 집권을 꾀하고 있다는 정치 현실은 한국의 1970, 1980년대를 연상케 합니다.

알수록 볼수록 더 넓은 세계, 오늘은 최근 집권연장 개헌안이 통과된 이집트로 가보겠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어서 오세요. 이집트, 어떤 나라입니까?

[인터뷰]

이집트가 굉장히 독특한 나라죠. 우리에게는 피라미드로 많이 알려져 있고요. 또 아랍과 북부 아프리카 무슬림 국가들 중에는 가장 개방도가 높습니다, 세속화된 국가이고.

카이로 같은 경우에는 아랍의 뉴욕이라고 불릴 만큼 영화산업도 굉장히 발전을 했고 출판도 많이 되고 있는 상황이죠. 또 하나 이집트가 핵심은 방금 말씀드린 세속주의가 이미 1950년대부터 자리를 잡아서 다른 국가들이랑은 좀 다르게. 그런데 어쨌든 아랍의 맹주 국가를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지금 나오는 것처럼 인구도 1억이 넘고요. 전반적인 국토나 군사력 측면에서 아랍의 어떤 국가들보다도 강력하죠. 그렇지만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다르게 가장 개방적이고 세속주의적인 국가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이집트의 주요 산업이 관광업인가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관광업이, 10% 이상을 관광 수입에 의존을 하고 있고요. 우리에 널리 알려진 피라미드라든지 무궁무진한 그런 관광 자원들이 있죠. 그런데 관광자원들이 많이 여러 가지로 활용이 못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2011년 이른바 아랍의 봄이 시작되면서 정국이 불안정해졌고요. IS, 이슬람 국가가 그곳에서 또 테러를 함으로써 전반적으로 관광산업이 굉장히 위축됐다가 최근에 다시 관광산업이 예전의 한 3분의 1까지 위축이 됐었거든요. 예전 수준으로 연간 800만 명 이상, 최근에는 다시 방문하는 수준으로 회복은 하고 있습니다.

[앵커]

조금 전에 IS에 의한 테러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꼭 IS가 아니더라도 저희가 뉴스로도 이집트의 관광객을 노린 테러 보도를 자주 했던 것 같아요. 왜 그런 게 일어나는 건가요?

[인터뷰]

그러니까 지난주죠. 지난주에 이집트가 아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박물관 바로 50m 떨어진 곳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17명이 다쳤다라고 하고요. 같은 비슷한 장소에서 작년 12월에도 있었거든요.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역시 IS 소행이 아닌가라고 추측도 하는데 그 외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드리겠지만 지금 현재 집권을 하고 있는 엘시시라는 대통령이 이전에 이슬람 근본주의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지금 집권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여전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어서 정부를 상대로 지금 테러를 하고 있는 거죠.

[앵커]

관광객을 상대로 했지만 결국은 정부를 노린 것이다?

[인터뷰]

그렇죠.

[앵커]

무슬림형제단 얘기도 나오는데 이건 어떤 단체인가요?

[인터뷰]

무슬림형제단은 1930년대에 사실 처음 시작이 됐습니다. 1930년대에 아랍국가들을 향해서 서방의 여러 가지 문물들이 침투하기 시작하니까 자신들이 그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그래서 일종의 NGO 운동 같은 걸로 시작됐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정체성을 지키자. 그런데 그게 정치세력화되기도 했고 또 일부는 극단으로 흘러서 테러 조직으로 인정받기도 하고요. 방금 말씀드린 엘시시 현 대통령 바로 이전에 무르시라고 선거에 의해서, 자유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무슬림형제단 출신입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2011년에 아랍의 봄이 왔고 그래서 일종의 시민혁명으로 무바라크 정권을 축출한 거잖아요. 그리고 당선된 사람이 무르시. 이 사람이 이슬람 근본주의자 그리고 이슬람형제단 출신이고. 그러면 그 당시에, 그러니까 2011년 아랍의 봄 이후에 이집트의 국민들이 무르시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인터뷰]

일단 무바라크부터 시작을 해야 되는데요. 무바라크는 1981년인가에 집권을 했습니다. 그전에 사다트가 암살되고 나서. 군 출신이고요. 무려 30년을 집권했습니다.

말도 못한 독재였고 또 억압도 있었고 부패가 매우 심했죠. 그래서 2011년 이집트 사람들이 봉기를 해서 말 그대로 축출을 한 거죠. 축출을 하고 자유선거를 했습니다.

자유선거를 해서 선출했는데 말씀드린 무슬림형제단의 무르시가 됐는데요. 51%를 가져갔습니다, 전체 투표의.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거의 한 반 정도죠. 그러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집트는 무슬림 국가의 정체성은 갖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세속화됐기 때문에 두 개의 충돌하는 세력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무슬림의 이슬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에 우리는 세속화된 아랍민족주의를 주창해야 된다. 그게 유명한 나세르 때부터 이어지는 건데요.

2가지의 서로 다른 세력이 충돌을 했는데 일단 선거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의 무르시가 됐습니다. 문제가 이 사람이 되니까 이슬람의 근본주의 정책을 시작한 거예요. 예를 들어서 히잡이라고 해서 여성들이 감고 다니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걸 국정과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 거리에 나설 때 모든 여성들이 해야 된다.

[앵커]

의무화했군요.

[인터뷰]

의무화를 했죠. 그리고 또 내부에 있는 기독교의 교회들이 있는데 교회를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못하도록. 그런 형태의 이슬람 근본주의의 차별을 시작한 거죠. 그랬더니 다시 민중봉기가 시작됐고 말씀드린 반 정도의 이집트의 국민들이 그 세력에 반대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랬더니 그 틈을 타고 지금 현재 대통령인 엘시시, 역시 군 출신이고요. 국군 대장 출신입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죠.

[앵커]

그럼 엘시시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지금은 어떻습니까?

[인터뷰]

지금은 정국이 안정이 됐다고는 얘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강권, 철권정치라고 독재권력입니다. 그건 확실한 거고요. 그런 형태로 진행이 돼서 안정은 되고 있는데 여전히 여러 가지 불씨는 남아 있죠. 그런데 집권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독재, 구테타로 하니까 구테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있었는데 지금 알려지기로는 한 2000명 정도를 직접 발포가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망자가 그 정도로 나왔고요. 그 후에도 굉장히 많은 숫자의 실종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부 공권력이 실종을 해서 그중에 가장 잘 알려진 사례 중 하나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실종이 돼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나중에는 결국 주검으로 발견이 됐거든요. 그런데 고문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이집트에 항의를 할 텐데, 이집트에서 정부에 하는 얘기는 이건 테러범의 소행이다. 그래서 이집트와 이탈리아가 거의 단교 직전, 지금도 사이가 매우 안 좋죠. 그런 사례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앵커]

2011년에 아랍의 봄 봉기가 있었고 그래서 바로 기존 정권이 축출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다시 시위가 일어나고 그 틈에 군부가 일어나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거기에 또 저항했는데 발포가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쿠데타가 2013년 아닙니까? 그리고 나서 2014년에 엘시시가 집권한 거죠?

[인터뷰]

네, 2014년에 다시 대선을 치렀죠. 그래서 선거에 의해서 선출은 됐습니다.

[앵커]

전두환 대통령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단순 대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엘시시는 어떤 인물입니까?

[인터뷰]

말씀드린 것처럼 군 출신이고요. 국군대장까지 했고 군 최고, 지금 나옵니다마는 국방부 장관을 했고 정보국장을 했고 전형적인 군 출신이고요. 그래서 사실은 무르시 때 대장으로 진급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정치색을 띠어서 쿠테타를 일으켰기 때문에 지금 전두환 장군이랑 비슷한 상황이다라고 유사점과 차이점은 있습니다마는 예를 들어서 쿠데타를 했다는 건 분명하고요.

전두환 장군 때는 우리가 광주민주화운동 항쟁을 경험을 했던 것처럼 지금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쿠데타에 반대하는 세력을 무차별하게 그렇게 진압을 했던 것도 있고 그리고 굉장히 지금 강력한 철권, 그런 압박 정치,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정국은 안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IS랑 직접 나서서 싸우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서방국가, 특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2017년에 엘시시를 미국 백악관으로 초청을 해서 같이 만나기도 했습니다. IS의 소탕작전에 가장 앞서서 싸우고 있는 그런 세력 중에 하나죠.

[앵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서 어떤 국내외의 지지를 얻고 있는 그런 정권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인터뷰]

더불어서 경제적인 측면도 무르시가 집권을 했을 때 방금 말씀드린 무슬림형제단, 이슬람 근본주의자죠. 그때는 실업률이 거의 두 자릿 숫자까지 올라갔습니다. 14~15%. 그런데 지금은 다시 한 자릿수로 떨어지고 말씀드린 것처럼 관광객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서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좀 나아지고 있죠.

[앵커]

최근에 보니까 또 장기집권 개헌도 통과가 됐더라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장기집권 개헌을 통과시켰는데요. 기본적으로 기존 헌법에는 재임, 두 번밖에 안 되는데 세 번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요. 대통령의 재임 기간도 원래 4년인데 6년으로 지금 늘려놨죠.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2030년까지 집권을 할 수 있다라고 보는데요. 독재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또 개헌을 할 수도 있죠. 종신으로 갈 수도 있죠.

[앵커]

그 이후에도요. 일단은 2030년까지 장기집권의 기틀은 마련한 거라는 거죠. 개헌 투표율이 얼마나 됐습니까?

[인터뷰]

투표율은 제가 알기로는 한 40%.

[앵커]

40%대죠?

[인터뷰]

그런데 득표율은 88%대인가 나왔는데요. 그 이후에도 2018년에 대선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득표율이 98%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여러 가지 선거 감시를 하는데 아주 완전한 그런 부정선거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부정의 요소가 있었죠. 그런 것은 사실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지금 엘시시 대통령이 대선을 두 번 치렀고 개헌을 치렀는데 거의 세 번 다 90% 안팎의 지지를 받은 거예요. 그런데 투표율은 물론 50% 이하였지만. 알겠습니다.

[인터뷰]

2018년 3월달 선거를 잠깐 말씀드리면 경쟁자들을 거의 사전에 제거를 했었습니다. 막강한 경쟁자가 한 명 있었는데 체포를 해 버렸고요. 또 한 명의 야당의 경쟁자는 갑자기 실종됐다가 나타나서 후보를 포기시켰고요. 그러니까 사전에 공작이 다 있었다는 얘기죠.

[앵커]

그러면 전두환 전 대통령만 생각나는 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도 오버랩이 됩니다.

[인터뷰]

독재 권력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들을 지금 보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글쎄요, 아랍의 봄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인터뷰]

저는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2011년이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북아프리카랑 중동 국가들이 이른바 아랍의 봄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 이후에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그나마 정착시키고... 물론 문제가 있습니다마는, 정착을 시키고 있는 곳이 튀니지죠. 나머지 국가들은 더 훨씬 안 좋은 상태로 많이 돌아갔고요. 지금 엘시시의 이집트도 오히려 무바라크 때보다 훨씬 더 강압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일단 대중들이 한번 이런 민주주의를 쟁취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또 기회가 오면 저는 다시 이런 민주화를 할 기회는 이집트 국민들한테도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북미관계 잠시 여쭤보겠습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 화물선 압류 문제 때문에 북미 간에 또 한 번 세게 붙는 게 아닌가 이런 우려가 있어요. 어떤 상황입니까, 지금?

[인터뷰]

이게 만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작년 4월달에 인도네시아에서 일단 압류가 됐거든요. 문제는 석탄을 밀수출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은 UN제재 결의 위반이죠. 그래서 UN제재 결의에 따라서 인도네시아가 일단 압류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석탄을 수출하는 북한의 기업이, 개인이, 권철현이라는 개인인데 그 개인이 그 과정에서 달러화를 썼는데 그 달러화를 하는 기관이 미국 뉴욕에 있는 기관이에요. 그랬더니 미국 뉴욕에 있는 연방 검찰이 이것은 미국 국내법 위반이자 또 UN 제재 결의 위반이니까 수사를 시작했고요.

그래서 그 검찰이 미국 뉴욕 법원을 통해서 압류를 하겠다라고 영장을 신청했는데 그게 통과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떤 의미가 있냐면 미국 국내법과 물론 제재도 있습니다마는 법무부가 따로 움직인 거거든요.

여태까지 제재는 미국은 대부분 재무부가 하고 국무부가 큰 가이드라인을 주는데 법무부가 움직인다는 것은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정치와는 별개로 미국 내에 시스템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법무부의 미국 법원은 독립성으로 유명하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다 계속 거부를 해 버릴 정도로. 이렇게 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게 앞으로 미국 국내법에 의해서 걸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건 정치적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죠.

[앵커]

북한도 사실상 외교전을 시작한 모습인데, 어떻게 보세요? 좀 이례적인 반응인가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래서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북한에서 가장 강력한 성명이 지금 연속으로 나오고 있죠.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나왔고 그다음에 UN 주재 북한 대사가 얘기했고 그다음에 제네바의 북한 주재 대사가 얘기했고 어제인가요, 조선신보에 또 났습니다.

핵심은 6. 12 정신을 위반하는 거고 강탈적 행위다. 우리는 묵과할 수 없다, 아주 강력한 메시지가 나오고 있거든요. 그건 말씀드린 것처럼 이 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풀고 싶어도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법무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2005년에 BDA, 방코델타아시아랑 많이 비교가 되는데요. 그때도 김정일의 자금 2500만 불이 압류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2005년 9. 19 공동선언이 거의 깨질 뻔했고 북한이 핵실험까지 간 그런 상황이었고. 그래서 지금 뭔가 앞으로 북미 간에 협상이 다시 재개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어느 정도는 좀 봉합이 되고 해결이 돼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앵커]

그러면 북한이 이렇게 이례적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이 산을 넘지 않으면 진전이 어렵다는 걸 북한 스스로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군요.

[인터뷰]

그렇죠. 그리고 이 제재가 굉장히 강화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앵커]

잇따라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죠?

[인터뷰]

있죠. 그리고 다른 국가, 일종의 세컨더리보이콧이 지금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형태, 그런 효과를 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의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죠.

[앵커]

그러니까 인도네시아가 그렇게 해서 미국이 넘겼으니까 또 다른 나라가 그렇게 할 거 아니에요.

[인터뷰]

할 수 있죠.

[앵커]

그렇군요. 이게 북미관계 전반에 좋은 건 아닌데 역으로 이게 해결되면 또 좋은 변수가 될 수도 있을까요?

[인터뷰]

그게 양면이 다 있습니다. 이 문제를 갖고 북미가 다시 접촉을 할 가능성은 있죠. 그러니까 뉴욕 채널을 통해서 북한이 문제제기를 하면 미국의 행정부 차원에서 뭔가 얘기를 할 수도 있고 그리고 지난 5월달에 미사일 문제도 일부에서 보도가 됐습니다마는 또 미국이 북한에 경고를 했고.

그러니까 그 두 가지 의제를 가지고 얘기를 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여전히 대화가 어려워질 수도 있죠. 그러니까 북한이 계속 이것을 일종의 전제조건으로 문제를 풀어라. 지난 BDA처럼 이 문제가 안 풀리면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그러면 또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곤욕스러워지죠.

왜냐하면 이건 법무부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행정부가 법원에 명령을 내리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이거든요.

[앵커]

BDA는 그때 그냥 외교적으로 취했던 조치인가요?

[인터뷰]

그때도 굉장히 어렵게 풀렸습니다. 그래서 간접으로 해서 결국 돈을 다시 북한한테 돌려주는 형태로 했는데요. 그것도 법의 여러 가지 망에 걸려 있기 때문에 푸는 데 어려움을 겪었었죠.

[앵커]

일단 접촉을 하게 되면 또 거기에 어떻게 나아갈지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연속적으로 북한이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있거든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 대한 확실한 경고의 메시지는 보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우리는 대화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뭔가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걸 뭔가 계기로 만들 수도 있죠. 그러니까 이러면 어쨌든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얘기를 해야 되니까 그러면 우리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하자. 지금 북한이 계속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래서 뉴욕채널이 혹시라도 가동이 된다면 얘기가 될 가능성도 저는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이게 압류를 했어요. 그 배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인터뷰]

압류 다음에 몰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압류까지 되는 영장이 통과가 된 거거든요. 사모아, 미국령인 사모아로 지금 가 있는데 그다음에 이것을 몰수할지 안 할지 그건 또 미국 법원이 결정을 하게 되죠.

[앵커]

만약에 미국 법원이 몰수를 안 하게 되면 북으로 돌려주는 겁니까?

[인터뷰]

그건 아마 그다음 과정이 있을 겁니다.

[앵커]

또 다른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인터뷰]

왜냐하면 일단은 미국 국내법과 UN 제재를 다 위반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뭔가 제재는 있어야겠죠. 그래서 일단 압류를 풀기 위해서는 뭔가 북한이 그것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될 겁니다.

[앵커]

지금 북한은 일단 미국이 불법적으로 압류를 했다고, 탈취했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석탄을 싣고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인터뷰]

아닙니다. 석탄을 싣고 간 것은 확실하고요. 그것은 인정하는데 북한이 몇 가지 이유로 미국이 불법적인 행동을 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하나는 2004년에 UN협약에 따르면 타국의 그런 자산을 몰수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데요. 그러니까 UN 주재 북한 대사가 얘기를 했는데 그건 사실이 틀렸습니다. 2004년에 그런 협약이 있긴 했었지만 그게 통과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실이 틀렸고요.

두 번째는 북한은 좀 더 원칙 차원에서 얘기를 하죠. 이건 국가의 주권의 문제인데 다른 국가의 자산을 갖고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두 번째고.

세 번째로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이 어쨌든 이것은 북한이 계속 가지고 가야 되는 여러 가지 자산의 가장 핵심인데 그 부분을 미국이 건드린다는 것은 결국 미국과 북한 사이의 관계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우리는 읽을 수밖에 없다. 그 세 가지를 갖고 지금 계속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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