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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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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근·현대 여성문학가 작품 통해 젠더적 사유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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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히구치 이치요 등 지음/김효순 등 옮김/어문학사/1만6000∼1만8000원


일본 근현대 여성문학 선집 전18권/히구치 이치요 등 지음/김효순 등 옮김/어문학사/1만6000∼1만8000원

일본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들의 작품집이 전 18권으로 발간됐다. 기획에서 출간까지 수년이 걸친 방대한 작업이다. 일본의 여성문학과 작가들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을 살아온 한국 여성의 삶이나 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작품 주제도 다양하다.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원폭, 전쟁, 식민지 체험 등이다. 도서출판 어문학사는 일본 여성문학이 다루어 온 다양한 주제는 한국 여성의 삶과 문학을 사유하는 데 유효하다고 밝혔다.

1권에는 히구치 이치요(김효순 역)의 대표 작품이 실렸다. ‘섣달그믐’, ‘키재기’, ‘가는 구름’, ‘십삼야’, ‘이 아이’, ‘흐린 강’ 등 여섯개 작품. 이치요의 소설은 개혁기 일본의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고뇌를 묘사하면서 대중의 심리를 묘사했다. 1896년 폐결핵 악화로 24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이지만, 당대 최고의 여성 소설가로 한때를 풍미한 작가였다. 그녀의 작품은 일본 근대 문학의 정전 목록에 올라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그녀는 2004년부터 5000엔권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2권, 3권의 요사노 아키코(김화영, 이혜원, 엄인경 역)는 시인, 작가,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잡지 ‘묘조’(明星)에 단카를 발표하면서 일본 현대 낭만주의의 중심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평론 ‘정조를 파괴하는 자는 남자’, 시 ‘너 죽는 일 부디 없기를’, 기행문 ‘파리에서’ 등이다. 그녀의 능력은 1899년 서일본 지방 문학청년들의 모임인 관서청년문학회에 등단하면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단카집 ‘헝클어진 머리칼’은 근대적 자아에 눈뜬 새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대담하고 분방하게 표현한 것으로,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1명의 자녀를 키우는 가정적이면서도 정력적인 여성이었다. 점차 내면적인 깊이를 더해 자기 관조와 사색적 서정을 표현한 작가로 남아있다.

4권 다무라 도시코(이상복, 최은경 역)는 다이쇼기(大正期)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1910년 오사카아사히신문 현상 공모 소설에 ‘체념’이 1등으로 당선되면서 직업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대표작으로 ‘미라의 입술연지’, ‘생혈’, ‘그녀의 생활, ‘포락의 형벌’ 등이 전해진다. 1980년 후반 일본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그녀의 소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본 페미니즘소설의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5권에 소개된 노가미 야에코(소명선 역)는 메이지, 다이쇼, 쇼와라는 세 시대를 아우르며 작품 활동을 한 대표적 문인이다. 가정의 틀 안에서 활동 반경이 넓지 않은 야에코는 점차 초기의 신변적인 내용을 탈피하여 소설의 다양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반전주의자이면서도 글로 표현하지 않았다. 대륙 침략과 2차 세계대전 패전과 이후를 살아온 여성으로서 반전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시대에 순응하는 모습도 보인다.

6권의 오카모토 가노코(최가형 역)는 막부와 번에 물품을 납품하는 상인의 딸로 유복한 가정 출신이다. 양부모 집에서 자란 가노코는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우고 ‘겐지 모노가타리’ 수업을 듣는 문학소녀였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23년 가마쿠라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만난 일을 소설로 옮긴 ‘두루미는 병들었다’를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이후 많은 소설을 발표한다. 특히 장편 소설인 ‘생생유전’(1940)은 다마강을 무대로 가노코의 어릴 적 추억과 인생 드라마를 그린 대표작이다.

7권, 8권의 우노 지요(이상복, 조주희 역)는 1929년 작품 중 정사의 장면을 그리기 위해 당시 실제로 정사 사건을 취재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화재의 중심이었던 화가 도고 세이지를 취재하러 갔다가 순순히 취재에 응해준 도고의 집으로 따라간 것이 계기가 되어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파리에서 돌아온 탕아 도고와 당시의 모더니즘의 풍조에 앞선 지요와의 결혼은 또다른 소문을 낳았다. 지요는 이 5년 동안 서구적 추상 수법으로 그려진 도고의 화풍에서 새로운 문학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셈이다

제 9, 10권의 미야모토 유리코(이상복, 김화영, 진명순 역)는 소설 ‘노부코’로 유명해졌다. 노부코는 자신의 연애·결혼·이혼에 이르는 실제 경험을 토대로, 미국과 일본을 무대로 중상류가정의 모습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주인공 삿사 노부코는 남편 쓰쿠다 이치로의 외롭고 뭔가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자신이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결혼 후에도 아기를 낳지 않고 일을 계속하겠다는 것에 동의하는 쓰쿠다의 배려에 마음이 끌려 주위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그러나 어머니 다케요는 노부코의 갑작스런 결혼에 크게 실망하여 쓰쿠다를 미워하며 딸과 늘 부딪친다.

11, 12권의 하야시 후미코(김효순, 오성숙 역)는 노력형 작가로 유명해졌다.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그려낸다. 그녀의 사후에도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됐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청빈의 서, 만국, 뜬구름, 밥 등이 있다.

13권의 사타 이네코(송혜경 역)는 아사히상(1983)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다. 시, 에세이, 장단편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여기에 번역된 작품도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발표된 에세이와 소설로, 넓은 시대를 아우르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녀에게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식민지 조선과 그 주변이다. 사타 이네코는 1940년과 1941년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선을 방문한다. 그러나 조선을 직접 여행하기 전에도 시나 소설에서 이미 조선인을 등장시키고 있다.

14권의 엔지 후미코(최은경 역)는 현대들어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 ‘여자고개’는 1949년에서 1957년에 걸쳐 ‘소설신초’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1957년 제10회 노마문예상을 받은 ‘여자고개(女坂)’의 사전적 의미는 높은 곳에 있는 신사나 불당 등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 길 중에서 경사가 급한 ‘남자고개(男坂)’에 반대되는 경사가 완만한 비탈길을 일컫는 말이다. 여자고개는 소설에서 주인공의 자택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이기도 하며, 여성의 일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15권의 히라바야시 다이코(이상복 역)는 남성 위주의 사회구조에서 여성이 직면한 고통과 슬픔을 묘사해 온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알려져있다. 작품의 대부분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16권의 오타 요코(오성숙 역)의 작품은 ‘시체의 거리’, ‘겨울’, ‘반인간’은 원폭의 범죄성을 집요하게 추구한 원폭문학이다. ‘시체의 거리’는 1945년 8월 6일, 인구 40만 명의 도시 히로시마가 한순간에 파멸되고, 원폭 피해로 십수만 명의 시체가 켜켜이 쌓인 거리로 변한 참상과 공포를 기록하고 있다. 미점령군사령부(GHQ)의 검열 공포도 작가를 더욱 위축시켰다. 오타의 원폭문학은 인간의 눈과 작가의 눈, 두 개의 눈으로 본 원폭의 범죄성을 고발하는 한편, 죽음의 두려움과 전쟁에 대한 분노가 스며들어 있다.

17권 사키야마 다미(손지연, 임다함 역)는 섬 출신이라는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작품을 남겼다. 사키야마 다미의 작품세계는 일본 본토 독자는 물론이고 오키나와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평론가나 연구자들은 사키야마 다미가 즐겨 사용하는 낯선 언어들을 일컬어 ‘다미 고토바’라고 부르며, 난해한 작품을 이야기해왔다. 비평가들이 어렵다고들 말하면서 사키야마 다미 작품의 매력을 바로 그 부분에서 찾고 있음은 아이러니다.

18권 이다 유코(손지연, 김효순 역)는 기존 페미니즘 비평과 젠더 비평 연구에서 자명한 것으로 여겨온 ‘여성’이라는 범주에 의문을 던진다.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복잡하게 중층화된 존재임을 다양한 여성작가와 작품을 통해 세밀하게 고찰하고 있다. 아울러 페미니즘 비평과 젠더 비평, 독자론과 컬처스터디즈,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을 넘나들며 여성문학에 대한 기존 해석과 다른 새로운 읽기 방식을 요청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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