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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30여년 금융산업 현장 외길… “잿빛 한국사회 대수술 필요”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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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으로 시작해 최연소 사장 승진 / 능력있는 남자 찬사에 “운이 좋았다” /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10년 / 정권들 단기적 땜질 처방에만 치중 / 지금의 현대 사회는 ‘제로섬 사회’ / 한정된 피자에 먹을 사람만 느는셈 / 자영업 등 다수 힘없는 사람들은 몰락 / 경제·삶의 방식 대전환이 필요한 때 / 기업 고용창출·해외진출 ‘생존’ 힘써야 / 4차 산업혁명 걸맞은 교육개혁 시급 / 무질서한 통일 사회전반에 큰 부담 / 北 중진국 수준 도달때까지 협력을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은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사라지게 합니다. 지금은 공급과잉이 아닌 산업이 없으며, 이전 경제를 주도했던 산업은 몰락을 예고합니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임금상승은 어려워지고, 국가 간, 개인 간 소득 양극화는 심화될 것입니다.”

저서 ‘수축사회’를 최근 출간해 주목받고 있는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의 말이다. 홍 대표는 미래에셋대우와 그 전신 KDB대우증권 사장을 지낸 금융경영 전문인.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에 최연소로 정상에 올랐다. 이 정도면 모든 회사원들의 ‘롤모델’로 오르내릴만 한 인물이만, 정작 본인은 “운이 좋았다”고만 말했다. ‘능력있는 남자’라는 주변의 찬사에 “그렇지않다”면 손사래를 쳤다.

세계일보

홍성국 대표는 “두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만들어 나간 점”이라면서 “나의 회사 후배들은 지금도 가족과 같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지금 벌어지는 문제는 과거부터 예상되었다. 그때마다 우리 정권들은 단기적 땜질 처방에만 치중하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지금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전체사회가 수축하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30여년을 금융산업 현장에 있었던 홍대표가 보는 미래는 온통 잿빛이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그는 한국사회를 비롯한 전세계가 수축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수축사회와 4차산업혁명이 만나면서 경제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 점을 알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모든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은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 감소는 확정되어 있다.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를 가정한 사회시스템은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가동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에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사회안전망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특히 교육은 학생 수 감소로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그는 솔직히 이런 현상은 한국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세계가 수축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다. 한국 정치판은 이를 쟁점화하려 하고 있지만, 이미 글로벌 공통 현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한국의 리더들에게 많이 부족한 측면이다.”

홍 대표는 지금 사회를 ‘제로섬 사회’로 표현한다. 피자 크기는 고정되어 있는데, 내가 더 먹으려니 남의 파이를 빼앗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

“수축사회에서는 힘 쎈 사람이 독식한다. 반대로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은 굶어야 하는 상황이다. 바로 양극화 현상이다. 아울러 일부 독보적 기술을 가진 창의적 사업가나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자영업 등 내수시장 몰락의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 앞으로 망치로 두더지 잡는 게임과 같이 많은 문제가 돌출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홍 대표는 대전환을 촉구한다. “한국이 수축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방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20년쯤 앞을 내다본 사회혁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라고 지적했다.

“수축사회에서 일자리 해법은 기본적으로 없다. 오직 가능한 것은 파이를 늘리는 것 즉, 경제성장률을 구조적으로 높이는 방법 뿐이다. 성장해야 분배도 있다. 한국에 더 많은 ‘일’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규제 완화라는 수동적 대안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외 기업을 유치해야한다. 심하게 얘기하면 베트남 보다 생산비가 더 싸지게 되도록 해외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에 세금, 인프라 비용 등에서 혜택을 줘야 한다.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한다.”

그는 대· 중소기업, 좌·우파를 가리지않고 한국경제의 생존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 그 자체다. 향후 이데올로기는 오직 ‘생존’이라는 이데올로기만 존재할 듯 하다. 좌파이든, 우파 정책이든 생존에 필요하면 뭐든지 해야 한다.”

그는 대기업에 대한 사회 일각의 곱지않는 시선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대기업은 해외로 나가 돈 벌어오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이를테면 삼성전자가 작년말 17조원 이상 세금을 냈다. 연봉 5000만원 짜리 일자리 34만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SK하이닉스 12만 개, 포스코도 2만 6000 개나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2018년 실적 추정 기준, wisefn 자료)”

이어 “물론 대기업의 갑질은 철저히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을 통해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면 결국 세금이 줄어든다. 그러면 복지비용을 누가 내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대외적인 요인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우리 대기업이 집중한 산업에 중국이 발 빠르게 따라 붙고 있다. 만일 한국의 대기업이 무너지면 고용뿐 아니라 수출, 세금, 내수 경기 등 경제 모든 분야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국민의 성원이 필요한 위험한 시기다. 대기업이 처한 문제점은 소재, 조선, IT, 자동차 산업 등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 차원의 공급과잉이 가장 심한 산업 분야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시스템의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의 교육 방식으로는 미래 청년들의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4차산업혁명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교육 개혁이 가장 절실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교육을 비용 측면에서 만 바라봤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열정적인 설명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홍 대표에게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속칭 좋은 회사인데 좀더 있다가 내려오지 그랬냐”고 묻자,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1~2년 더 수명을 연장해봤자 내 인생에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쿨한 답변이다.

“지금은 주 52시간 근무가 정착되고 있지만, 100시간 정도 일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당시 함께했던 후배들도 모두 큰 성공을 이뤄냈다. 일요일에 출근하면 애인을 회사로 데리고 오는 직원까지 있었다. 이 때 같이 짜장면이지만 함께 먹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결과인지 스승의 날에 꽃과 선물을 많이 받았다. 나보다 더 행복한 CEO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젊은 CEO로서 보람찬 경험 한 토막을 묻자, 홍 대표는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만들어 나간 점”이라면서 집단지성을 소개했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는 단단한 껍질 속에 있는 거와 같다. 남을 뛰어넘어야 산다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이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나름의 지론을 펼쳤다. “재임 시절 ‘집단 지성’이라는 용어를 시험해 봤다. 전체 직원들과 지식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업무를 진행하는 식이다.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지식을 동료와 나누면 시너지 효과가 크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로 연결해 세상을 논하고 나의 지식을 살찌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홍 대표에게 북한 경제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방안을 물었다.

“무질서한 남북통일은 한국 사회 전반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따라서 북한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체력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북한이 현재의 중진국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한국이 다양한 형태의 경제협력을 한다면 통일은 비용이 아니라 기회가 될 듯 하다. 어떤 식으로든지 남-남갈등을 완화시킨다면 기업들은 굳이 먼 베트남 까지 가지 않고서도 우수한 노동력을 북한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에는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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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국 누구인가…

△1963년 충남 홍성 출생 △ROTC 24기 임관 △대우증권 입사 △홀세일 총괄본부장, 전무 △대우증권 CEO △미래에셋대우 CEO △혜안리서치 대표

저서 : 디플레이션 속으로(2004), 세계경제의 그림자 미국(2005), 글로벌 위기 이후(2008), 세계가 일본된다(2014), 인재 VS 인재(2017), 수축사회(2018,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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