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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호주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와인이 있다?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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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호주 태즈마니아에서 생산되는 펜폴즈 야타나 샤도네이


목련 꽃 같아요. 더 자세히 얘기할까요. 목련 꽃을 가득 안은 맑은 영혼의 여인이 내 앞에 서있어요. 꾸미지 않아도 아침이면 햇살을 고스란히 담는 매끄러운 우유빛 피부. 그래서 때묻지 않은 순수한 외모. 하지만 내면이 더 아름답군요. 그녀는 말해요. 멋대로 당신 입맛에 맞게 날 가꾸려하지 말아요. 왜곡도 말아요.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바래요. 거짓없는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싶네요. 그러면 스스르 잠이 올거에요. 깊고 달콤한 잠 속으로. 목련은 닮은 샤도네이. 펜폴즈 야타나(Penfolds Yattarna). 단지 한모금 마셨을뿐인데 목련꽃을 닮은 맑고 청초하면서 우아한 그녀같은 내면의 향기가 주말의 꿈같은 휴식으로 이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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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주요 와인산지


호주 와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와인은 뭘까요. 바로 ‘짐승남’ 와인 쉬라즈(Shiraz). 호주 쉬라즈의 대명사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바로사 밸리(Barosa Valley)랍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는 1860년대 포도나무 뿌리를 감염시켜 전세계 포도밭을 황폐화시킨 필록세라를 피한 곳으로 호주 유명 와인산지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호주 와인 산업을 간단히 설명할께요. 이민자들의 도시 시드니에서 가까운 뉴사우스웨일즈에서 호주 와인산업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곳은 아주 더운 곳이라 생산자들은 섬세한 포도재배에 필요한 서늘한 곳을 찾아 남쪽의 빅토리아로 옮겨갑니다. 하지만 필록세라가 포도밭을 휩쓸면서 그만 와인산업은 황폐화되고 말아요. 그래서 다시 희망을 안고 필록세라가 번지지 않은 왼쪽, 호주 중남부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했는데 여기서 호주 와인산업이 황금기를 맞게됩니다. 바로사 밸리(Varosa Valley), 클리어 밸리(Clare Valley), 에덴 밸리(Eden Valley), 애들레이드 힐(Adelaide Hills), 쿠나와라(Coonawarra) 등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산지들이 몰려있는 까닭이죠. 특히 필록세라를 피한 덕분에 수령이 100년이 넘은 포도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바로사 밸리는 이런 올드바인 쉬라즈가 몰려 있어요. 덥고 건조한데다 뿌리가 땅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면서 다양한 성분과 미네랄을 흡수해 깊은 맛을 내는 올드바인까지 있으니 호주에서 가장 농축미를 갖춘 파워풀한 쉬라즈를 만들수 있죠. 마치 근육이 우락부락한 격투기 선수 추성훈 같은 와인이라고 할까요.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과 블랙페퍼 등 향신료, 얼씨한 흙내음, 스모키함 그리고 높은 알코올 도수로 대변되는 쉬라즈가 빚어지면서 바로사 밸리는 호주 쉬라즈의 대명사가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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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애들레이드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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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쿠나와라


그렇다면 호주는 마초같은 쉬라즈만 있는 걸까요. 남반구인 호주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기온이 서늘해지죠. 그중 최근 스파클링과 화이트 와인의 산지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 빅토리아보다 훨씬 남쪽인 태즈마니아(Tasmania) 섬이랍니다. 뉴질랜드와 같은 위도인데 서늘하고 일교차가 크다 보니 이런 기후를 좋아하는 피노 누아가 잘 자라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부르고뉴 마을단위 피노 누아로 속을 정도랍니다. 차세대 고급 피노 누아 생산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죠. 또 하나. 피노 누아가 잘 자라는 곳이면 늘 따라다니는 화이트 품종 샤도네이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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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펜폴즈 그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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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폴즈 대표 와인들


호주 정부가 2001년 50번째 빈티지 생산을 기념해 국가문화재로 등록한 와인이 있답니다. 바로 ‘호주 국보급 와인’으로 불리는 그랜지(Grange)입니다. 영국인 의사 크리는 영국인 의사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즈(Dr. Christopher)가 호주로 이주하면 역사가 시작된 펜폴즈는 호주 와인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릴정도로 호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라고 할수있어요. 처음에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달콤하고 알콜도수가 높은 주정강화 와인을 주로 생산하다 1844년 매길 에스테이트 (Magill Estate)에 펜폴즈를 설립하면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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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폴즈 야타나 샤도네이


이런 펜폴즈(Penfolds)가 태즈마니아의 샤도네이로 빚는 목련꽃을 닮은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이 펜폴즈 야타나(Penfolds Yattarna)랍니다. 그래서 ‘화이트 그랜지’로 불리죠. 고급 샤도네이 와인의 고향인 프랑스 부르고뉴의 마을단위 와인인 몽라셰나 뫼르소 처럼 아주 우아하면서도 크고 흰꽃같은 캐릭터, 은은한 오크향, 효모, 토스트향과 침샘을 적절하게 자극하는 기분좋은 산도 복숭아 등의 과일향이 입안을 가득채웁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서늘한 기후를 지닌 애들레이드 힐의 샤도네이도 함께 사용된답니다. 사실 애들레이드 힐은 호주에서 가장 먼저 뜬 전통적으로 유명한 샤도네이 생산지에요. 요즘은 마가렛 리버가 샤도네이 생산지로 각광받으면서 애들레이드 힐은 인기순위에서 밀렸지만 아직도 샤도네이 생산지의 명맥을 잇고 있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코스트나 까르네로스, 칠레 카사블랑카 레이다 등 신대륙 화이트 와인 생산지는 대부분 바닷가여서 한류의 영향을 받아요. 그러나 애들레이드 힐은 고도가 해발 400m로 높아서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좋은 산도를 지닌 샤도네이 재배가 가능합니다. 1995년 첫 출시된 야타나(Yattana)는 호주 원주민 언어인데 조금씩 조금씩(Little by littel ), 점차적으로(gradually)라는 뜻이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뛰어난 와인으로 진화해 호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품 샤도네이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호주는 주로 레드 와인 생산에 집중하다 1990년대에 이르러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 생산에 눈을 띄기 시작했는데 선두주자가 펜폴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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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폴즈 쿠눈가힐 샤도네이


펜폴즈의 쿠눈가힐(Koonungahill) 샤도네이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여러 산지에서 뛰어난 포도만 골라 블렌딩해서 만든 펜폴즈의 엔트리급 샤도에이에요. 이렇게 여러지역의 포도를 섞어서 만드는 것은 호주 와인 산업의 대표적인 특징이죠. 프랑스 AOC, 이탈리아 DOC 등 보통 와인은 생산지 규정을 따라야합니다. 그 지역에서 나는 포도만 사용하고 특정 품종이 일정 비율을 충족해야 그 지역 명칭을 표기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기업들이 이끄는 호주 와인산업은 여러지역의 포도를 섞어서 만들수 있기에 빈티지별로 편차가 거의 없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답니다. 펜폴즈는 이를 ‘멀티 리전(Multi region), 멀티 빈야드(Multi vineyard)’라고 얘기합니다.

쿠눈가힐은 청사과, 서양배, 복숭아, 멜론, 파인애플 등 신선하면서도 잘익은 과일과 과하지 않은 오크향, 기분좋은 산도, 미네랄이 잘 어우러져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산뜻한 샤도네이로 가성비도 뛰어납니다. 1976년에 첫 생산된 쿠눈가힐은 오래된 레이블 70년대부터 출시된 엔트리급 와인으로 호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와인이기도 합니다.

최현태 기자 h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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