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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장편소설은 둔재의 예술…내 인생 절반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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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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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언(箴言)을 쓰지 않는다. 말씀이 되는 소설을 꺼려서다. 밑줄 긋게 만들지 않고 그저 '쭈욱' 읽도록 이끌어 서사의 덫에 독자를 빠뜨린다. 상상의 절벽에 독자를 올리고 그는 묻는다. 자, 이제 뛰어내리십시다. 같이 가겠다는 대답도 안 했는데 그냥 밀어버리는 게 그의 방식이다. 그러나 뛰어내려본 독자는 안다. 저곳엔 죽음도 한계도 없고 오로지 상상만 있음을. '김탁환 소설'의 풍경이다. 장편 '대소설의 시대'(민음사 펴냄)를 낸 김탁환 소설가(51)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지난 17일 만났다.

5개월째 이곳에 거주하며 집필 중인 그는 "원두 분쇄기까지 들고 왔다"며 커피를 직접 내려 건네며 웃었다. 18세기 '백탑파(白塔派)' 소설과 21세기 '사회파' 소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는 이번 소설을 두고 "내 인생 절반이 담긴 소설"이라며 한 번 더 씨익, 웃었다.

김탁환 소설에 가닿으려면 '백탑파'란 용어부터 관통해야 한다. 18세기 실학자 중심의 지식인 집단을 일컫는 단어가 백탑파다. 김탁환 소설가는 '백탑파 시리즈'로만 네 작품을 썼고, 이번이 다섯 번째 장편이다. 199권까지 잘 써오던 당대 최고 '대소설 작가' 임두가 5개월째 200권을 못 내자 김진과 이명방이 이유를 캔다는 줄거리다. '대(大)소설'은 근대 이후 용어인 장편소설의 다른 이름이다.

"한글 소설이 가장 극에 달했던 시기가 백탑파 시대였다. 잔이든 비녀든, 옛 물건은 옛사람의 삶을 상상케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람들은 저 물건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상상한다. 나는 추리극이란 형식으로 내 상상을 독자와 함께 나누는 거다. 이번엔 여성이다. 18세기 작가도 독자도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소설을 사랑한 조선 여성을 주제로 소설 그 차례를 논하며 공감해보고 싶었다."

'인생 절반'을 이번 소설에 투입시켰다는 자평은 허풍이 아니다. 김탁환의 소설은 고전문학계라는 대양에서 들이치는 밀물 같다. 고전서사를 전공한 그는 실재라는 뼈대에 상상이란 근육을 덧대는데 한눈에도 군살이 하나 없다. 애독자들이 열광하는 건 그래서다. "인생의 중요한 주제를 정하고 이를 온몸으로 견딘 인물의 삶으로 그리려 한다. '정확한' 덧칠은 시대와 인물을 풍성케 한다."

사도세자란 네 글자도 이쯤 나왔다. 영조에게 매일 야단맞은 사도세자는 어떻게 자기를 위로했을까. "세자의 방 한쪽 벽엔 칼이, 다른 쪽 벽엔 금지된 소설이 놓여 대조를 이뤘다. 칼춤을 추고, 또 엄청난 양의 소설을 읽은 거다. 성경 직해본도 있었다. 소설 중독자로서의 사도세자와 그의 아들 정조를 떠올리면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서사의 미로에 갇힐 숙명임은 진즉에 깨쳤다. 고전서사를 전공으로 결정하니 지도교수님은 김진세·이상택 선생(서울대 명예교수)뿐이었다. 창덕궁 낙선재본 소설 정독은 불가피한 운명이었다. 낙선재는 84종 2000권의 소설이 발견된, 고전문학의 보고(寶庫)다. "제일 긴 거 읽겠다며 180권짜리 '완월회맹연'을 폈더니 같은 성씨가 너무 많아 누가 누군지 가리기 힘들었다. 한 번 읽는데 반 년 걸렸다."

한남대·건양대에 이어 카이스트 교수였던 그는 학문에서 벗어났다. 오직 장편소설가의 삶을 원해서였다. 변심해 '삶의 가지'를 잘라버렸다. 옹이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는 거목의 고백은 겸손하다. 속내는 좀 다르다. "남이 쓴, 그것도 수백 년 전에 나온 소설이나 읽으며 늙어가겠구나 생각했다. 장편과 논문에 양다리를 걸치다 둘 다 잘할 자신이 없어 그마저도 접었다. 왜 이렇게 사나 싶다."

학문의 정론을 드나드니 학계의 새 발견은 가끔 그를 '얼어붙게' 만든다. "열심히 '동전의 뒷면'을 썼는데, 새 연구 성과가 나오면 옛 소설은 제일 못 쓴 소설이 된다. 백탑파 소설은 2003년이 처음이니 16년간 얼마나 숱한 발견이 있었겠나. 그러면 소설을 그대로 놔둬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어느 시점엔 죄다 들어내고 다시 써야 하나, 소설가로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싶어 한숨을 쉰다(웃음)."

'장정일'이란 대명사는 문학의 길에서 마주친 반가운 얼굴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소설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길 안에서의 겹쳐보기, 장정일론'이 당선돼 비평을 먼저 경험했다. "소설은 내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다 해보고 안 맞으면 돌아서겠다며 비평에서 소설로 전향했다가 그 길이 일생이 됐다. 장 선배가 진해에 놀러왔던 기억도 난다. 술을 진탕 마시며, 당시 시간을 회고했었다."

그에게 장편은 '둔재(鈍才)의 예술'이다. 둔재는 호흡이 길어야 한다. 숨 한 번 쉬는데 '10년쯤' 걸린단다. "장편소설가의 수명은 마흔에 시작된다. 계획이 가능해서다. 답사, 연구, 분량에 소요되는 노력과 시간을 정확히 계측해야 하는데 마흔이 돼야 그게 가능해진다. 쉰까지 달리고 점검하는 거다. 예순부턴 모르겠다. 마르케스도 예순부터 분량이 짧아졌으니 나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시차(時差)를 두고 평행선처럼 이어진 김탁환의 원형 같다. 물론 "저는 접니다"라며 그는 고개를 젓겠지만 말이다. 발자크의 소설은 100편이 넘는다. 발자크에게 배운 건 '단순함'이었다. "소설가의 삶을 지망하며 발자크, 톨스토이, 에밀 졸라의 평전과 자서전을 읽었다. 나는 발자크에게 놀라운 명제를 얻었다. 그건 바로, 매일 써야 한다는 거였다(웃음)."

집필을 마치고 한 달은 쉰다. 그는 '책상 독서'와 '침대 독서'를 구분했다. "책상에서 읽는 책은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다. 침대는 나만의 독서다. 김사인·이병률·이문재 시인의 시집이 놓였는데, 침대에서 읽은 시집이다. 모든 책은 장작과도 같다. 소설이란 건 장작을 태우는 행위인데 일단 장작을 모아놔야 불이 크게 타오른다. 또 존 가드너와 레이먼드 카버가 쓴 '장편 소설가 되기'도 읽었다."

'인간 김탁환'을 묘사해달라고 짓궂은 질문을 던지니 의외로 "이미 생각했던 질문"이라며 응수했다. "롤랑 바르트가 자기를 묘사한 책을 읽고 나도 생각해봤다. 첫 문장은 일곱 글자다. '실패의 연속이다.' 출간한 책보다 실패한 책이 한가득이다. 나는 카프카처럼 죽기 전 실패한 원고를 친구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태워버리겠다. 어떤 경우에도 태작을 내지 않는 장편 작가로 남고 싶다."

[김유태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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