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세상 읽기] 이기적인 2기 신도시 주민 / 조형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몇년 전 ‘유가계급’이 되었다. 평생 집을 가지겠다는 꿈 따위는 없이 살았다. 고상한 윤리의식의 발로는 아니고 그냥 가진 게 무척 적었다. 덜컥 집을 산 것은 두 가지 우연이, 어쩌면 필연적으로 겹친 까닭이다.

우선 서울의 전셋값이 미친 듯이 올랐다. 변두리 산동네 우리 아파트 전세가 4년 새 9천만원 올랐고, 다시 1년 만에 7천만원 더 올랐다. 맞벌이로 모은 돈을 전세금 인상분에 몽땅 쏟아붓고도 빚이 늘었다. 우리는 탈진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서울 퇴출을 결심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뉴스를 접한다. 신도시 아파트 대폭 할인분양!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감당할 수 있는 빚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가즈아”를 외치며 이사했다. 그렇게 2기 신도시 주민이 되었다.

평생 산동네, 비좁은 골목길 사이에서만 살다 신도시로 오니 참 쾌적했다. 산책길 코스는 아름답다. 차 막힐 일도, 주차로 얼굴 붉힐 일도 없다. 소원이던 자전거도 장만했다. 전용도로를 따라 조금만 달리면 자연이 열린다. 내 집까지 생겼으니 이제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된다, 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 최초분양자와 할인분양자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최초분양자들은 어떻게든 시세 폭락을 막으려 했다. 처음에는 할인분양자의 이사를 막았다. 법이 용납하지 않으니 미구에 문을 열었지만 사사건건 부딪혔다. 그나마 시간이 흐르자 시세가 좀 회복됐고, 갈등도 잦아들었다. 나는 졸지에 미실현이지만 시세차익을 얻었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이다.

얼마 전 정부가 서울 아주 가까운 곳들에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아직 4만가구가 더 들어서야 완성될 이곳 신도시 유가계급 주민들은 핵폭탄이라도 맞은 분위기다. 이웃한 1기 신도시 주민들과 함께 계획을 취소하라며 항의시위도 벌이는 모양이다. 몇천명이 모였다니 격앙된 것이 분명하다.

시위나 주무장관의 대책 발표 기사 댓글에 1, 2기 신도시 주민들을 비난하는 의견들이 많다. ‘이기적인 2기 신도시 주민’이라는 제목도 거기서 빌렸다. 결국 자기들 집값 올리자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다. 자기들은 신도시 살면서 왜 신도시를 더 못 짓게 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보수야당 지지자들이라 시위한다는 비난도 있다. 그 외진 곳에 살면서 집값 오르기를 바라느냐는 비아냥은 그냥 패스.

해당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집값 때문인 건 맞고, 그 당 지지자라서는 아니다. 이 동네와 이웃 1기 신도시는 수도권에서도 가장 강력한 민주·진보정당 지지 지역 중 하나다. 집값 때문인 건 맞는데 그래 봐야 이 동네 소원이 분양가 회복이다. 주민들은 신도시 건설 때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홍보한 대책 상당수가 공수표가 된 데 분노한다. “속았다”는 게 이 동네 정서다. 약속은 부도낸 채 서울 집값 잡겠다며 입지 좋은 그린벨트에 또 신도시를 짓겠다니 분노한다는 것이다. 옆 동네 1기 신도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도시의 유가계급이 된 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웃에 임대단지, 행복주택 따위나 들어온다며 불평하는 게시물을 볼 때면 절망하게 된다. 벌써 올챙이 적 잊었느냐며 꾸짖는 댓글도 있어서 희망을 얻는다. 그중 나 자신의 이기적 변화가 제일 흥미롭다. 집값에 관심이 생기고, 개발 소문에 귀가 팔랑거린다. 내 내면의 눅눅한 저 아래에 집값에 대한 욕망이, 강인한 이기심이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진부한 결론을 내리려는 건 아니다. 살기 위해 이기적이지만, 살기 위해 협력해온 것도 진화의 역사다. 이기심이 강하다 해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수그러들기도 한다. 그게 정책의 힘이다. 안타까운 건 서울 집값 안정을 위해, 서울 더 가까운 곳에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해서 소유자를 늘리겠다는 서울·소유자·공급 중심 프레임이다. 서울의 주택 보급률이 97%다. 집이 모자라지는 않는다. 물론 자가보유율은 43% 남짓이다. 여기서 아파트를 더 공급해서 자가 소유를 늘리는 정책은 결국 나 같은 이들의 이기심을 자극한다. 틈새를 찾고야 마는 투기세력도 자극한다. 서울의 웬만한 전셋값도 못 되지만 저 프레임 덕에 집 한채를 소유해 보니 알겠다, 가지면 더 가지고 싶어진다는 걸. 이제 가졌다고 그리 말한다며 꾸짖는다면 부끄럽게 감수할 수밖에. 세상이 어렵다.

한겨레

조형근
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