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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거듭남은 내면질서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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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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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는 존재의 혁명적 변화와 거듭남을 강조합니다. 기독교에선 깊은 회개 반성을 통한 회심(回心)으로 지은 죄를 용서받음이며, 불교에서는 정견수행을 통한 내면의 정화를 통한 본래면목의 회복입니다.



얼른 보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원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정화와 죄(업장)의 소멸을 통한 영성회복을 지향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게 적당하게 해서되는게 아니라 아예 과거에 나를 살던 존재방식 (이를 에고라고도 한다)를 완전히 바꾸고 끝장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과거의 자기가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가 자기 내면에 들어와 자기를 대신해 살고 계신다고 고백한바 있습니다. 만공스님도 깨달으려면 과거의 자기가 죽고 O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겉으로 쓰는 말만 다른 거지 그 말들이 가르키는 진실은 똑같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이렇게 내면에서 과거의 내가 주인행세를 더 이상 하지 못하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성령 혹은 O이 왕의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빈껍데기로 되고 알맹이는 진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를 통해 나비로 환골탈태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자연은 이처럼 늘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지만 그걸 보면서도 볼 눈이 없는 사람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오온(생각,감정,감각)활동이 곧 나란 애벌레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애벌레 몸을 자기로 삼고 땅에서 나는 물질(뽕잎)을 먹으며 나날이 더욱더 살찌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왜 무얼 위해서 지금 자기가 여기서 이러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냥 더 갖고 더 즐기려고만 합니다.



오직 극소수의 존재만이 2차원적으로 어딘가 붙어서 살아가는 애벌레는 3차원 창공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기 위하여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영혼 속에서 깊이 느끼며 그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거듭남이란 오직 자기 내면질서의 회복임을 직감하며 탐구합니다. 살아온 과거의 깊은 고통과 슬픔이 그것이 고쳐지고 존재는 어렸을 때처럼 걱정근심없이 행복하게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천국(하늘나라)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한 것이지요. 이는 태초 에덴동산이 이미 우리들 마음 안에 있다는 선언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중생들이 이미 부처의 성품을 다 갖추고 있다는 석가의 말씀도 똑같은 진실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길을 끝까지 가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공부를 시작하고도 아직도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합니다. 이랬다저랬다 우왕좌왕하다 보니 가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알 수가 없기도 합니다. 자기 내면에 O(그리스도인 참생명)이 확실하게 주인 자리를 차지하실 때까지 에고가 자꾸 죽고 항복하는 연습을 통해 내면의 질서를 꼭 회복해야합니다.





글 김연수(피올라마음학교교장·변리사·한양법무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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