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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12세때 감독 꿈꾼 `봉테일`…예술·상업성 모두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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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기생충' 칸 최고상 ◆

매일경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봉준호 감독은 1969년 9월 14일 대구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화가였던 봉상균이며,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인 박소영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 아버지 서재에는 디자인 관련 서적이 빼곡했고, 아들은 아버지가 없으면 관련 책들을 꺼내 읽으며 홀로 만화를 그렸다. 훗날 감독이 된 그가 직접 콘티(전체적인 작화와 연출을 미리 그려놓은 것)를 그리는 것도 이 시기에 다진 실력 덕분이다.

TV와 만화는 그의 유년기를 사로잡았다. 특히 AFKN에서 방영한 할리우드 명작들은 그가 영화라는 세계로 깊숙이 빠져들게 한 계기였다.

앨프리드 히치콕, 샘 페킨파 같은 거장들을 이때 만났고, 이후 영화 잡지들을 읽으며 희귀작 수집에 더욱 열을 올린다. TV로 고전 영화들을 녹화하고 중고 비디오 가게를 누비며 명작들을 모아간 것도 이 시기 얘기다.

하지만 대학은 연세대 사회학과로 갔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1980년대부터 이장호 감독과 배창호 감독 영화를 보면서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다고 영화감독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봤다. 나는 영화를 전공하는 것보다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영화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생이 된 그는 다양한 인물과 삶을 체험한다. 농촌 봉사활동(농활) 등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경험했고, 영화 동아리와 학생운동을 오가며 충무로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닦는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영화아카데미(11기)에 들어가 한국 사회 지도층을 비판하는 단편 '지리멸렬'(1994)을 내놓는다.

영화 현장 경험은 영화아카데미 선배 박종원 감독 밑에서 시작했다. 이후 박종원 감독 소개로 박기용 감독 밑으로 가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첫 번째 장편 '플란다스의 개'(2000)를 준비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평범한 아파트 단지와 음산한 지하실을 대비시킨 공간 감각의 특출함, '루저'들을 내세운 색다른 코미디물이라는 점에서 각광받았다. 미술·음악·연기 등 영화의 모든 부분을 직접 챙기는 그에겐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장르를 비틀고 장르 간 경계를 지우는 그의 전복적 기질은 이후 꾸준히 변주됐다. 연쇄살인범을 끝까지 잡지 못하는 '살인의 추억'(2003), 한강 괴수가 출연하는 가족 영화 '괴물'(2006), 범죄극에 모성 드라마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마더'(2009) 등은 모두 기성 장르의 범주화를 거부한 작품군이다.

'살인의 추억'으로 대중과 평단의 신뢰를 한 몸에 얻은 그는 '괴물'로 1091만명을 모아 한국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이후 그의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2013)를 통해 할리우드로 저변을 넓혔고, 국내에서만 935만명을 모아 흥행에도 성공한다. 그의 여섯 번째 장편 '옥자'(2017)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 넷플릭스가 6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작품이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와 돼지 옥자의 사랑과 우정, 자본 논리로 옥자를 빼앗으려는 다국적기업과 이들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2017년 넷플릭스 콘텐츠로는 처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나 당시 수상은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봉 감독이 세계 최고 감독이라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사회와 작품을 문화와 예술로 연계해 폭발적 에너지로 만드는 거장"이라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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