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첫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 전부가 근거 없는 소설"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1회 공판에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합하고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공소장에 대해) 법률가가 쓴 법률문서이기보단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자문을 받아서 쓴 한 편의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적인 면에서 허점과 결점이 매우 많고 법원 절차나 법관 자세 등에 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공소사실 자체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공소장에 '인사심의관 등으로 하여금 보고서 작성하게 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등'은 둘 이상을 뜻해 이 문장에는 최소 4개의 행위가 들어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1개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권투 경기에서 상대방의 눈을 가리게 하고 두세 사람이 때리는 격"이라고 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선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게 밝혀지자 통상적인 인사 문건을 갖고 블랙리스트인 것처럼 포장했다"고 전했다.
검찰의 수사 기록이 추측성 진술로 뒤덮여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수사기록 행간을 보면, 직접 경험한 게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의견을 제시하라는 질문자와 검사의 독촉에 못 이겨, 교묘한 유도신문에 영합하는 진술자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취임 첫날부터 퇴임한 마지막 날까지 제 모든 직무행위를 뒤져 법에 어긋나는 게 없는지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느껴져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며 "이러한 수사는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권력의 남용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일본에 기원을 둔 법으로 일본에서 공직자 상하 간에 적용된 사례가 없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공직자 상하 간에 권리가 아닌 권한까지 해당된다고 확대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이 같은 사례가 전부 유죄가 된다면 공직사회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에겐 나날이 직권남용죄가 쌓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함께 기소된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도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고 전 대법관은 "노심초사하며 직무를 수행한 부분들이 모두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재판과 달리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정책과 목표를 설정하는 등 폭넓은 재량을 가지고 있는데, 사후에 부적절한 점이 있더라도 형사범죄에 이를 정도로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법관도 "검찰 공소장은 실체보다 부적절한 보고서 작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검찰 수사기록을 보니 많은 법관이 겁박을 당하거나 때로는 훈계와 질책을 받은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송광섭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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