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발걸음 쉬게 하는 정자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선선한 바람이 좋은 계절
정자가 만든 이야기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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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발걸음을 쉬게 하는 정자는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아직은 그늘의 선선한 바람이 좋은 계절, 땡볕을 막아 그늘도 만들어주고 바람이 지나는 길도 돼주는 정자에 앉아 무심한 풍경 바라보며 옛이야기 한번 들어보았다.
용산의 정자들과 달 뜨는 풍경이 압권인 흑석동 효사정
용산구 산천동과 마포구 도화동의 경계를 이루며 한강을 향해 흘러내린 산비탈은 예로부터 경치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한강을 굽어보는 그곳에 함벽정, 삼호정, 심원정 등 유명했던 정자 세 개가 있었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심원정 터로 짐작되는 곳 한쪽에 옛 정자와는 상관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자를 새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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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벽정은 현재 용산성당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삼호정은 조선 시대 헌종 임금 때 의주부윤을 지낸 김덕희가 지은 정자다. 당시 여성 시인들이 정자에 모여 한강이 굽어보이는 풍경을 보고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성심여고 후문 맞은편 길 건너 쉼터에 삼호정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정자는 현재 용산성당 성직자 묘지 아래 어디쯤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심원정은 용산문화원 위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공원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고종 임금 때 영의정 조두순의 정자였다.
지금은 빌딩과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서 한강을 굽어보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졌다. 함벽정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되는 용산성당 쪽으로 올라가다 뒤돌아보면 빌딩과 아파트 건물 사이로 한강이 빼꼼 보인다. 용산성당 성직자 묘지 위쪽에서 보면 한강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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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하게 펼쳐진 한강 풍경을 보려면 동작구 흑석동 효사정으로 가야 한다. 효사정은 조선 시대 세종 임금 때 노한대감의 별서였다. 어머니 시묘 3년을 마치고 그 자리에 별서를 짓고 추모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효사정은 동작구흑석체육센터 옆 언덕에 있다. 원래 자리는 현재 노량진 한강 부근이었다고 한다. 효사정 남쪽으로 흑석동 일대가 보인다. 한강과 북한산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풍경은 효사정 북쪽으로 펼쳐진다. 서쪽으로 흘러가는 한강 물줄기가 유장하다.
달 뜨는 풍경 또한 놓칠 수 없다. 효사정 언덕 아래 올림픽도로의 가로등과 오가는 차들의 불빛, 강 건너 아파트 단지와 빌딩 창으로 새어나는 불빛이 강물에 스미듯 번질 때 동쪽에서 보름달이 떠오르는 장면이 압권이다.
소악루에서 만난 겸재 정선, 세종과 효령대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망원정
겸재 정선은 어느 날 저녁 궁산에서 강 건너 안산에 피어오른 봉화를 바라본다(겸재 정선은 1740년부터 5년 동안 양천구와 강서구 가양동 일대의 현령을 지냈다). 눈 아래 한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에 푸른 산줄기가 넘실거린다. 그중 한 봉우리에서 피어오른 붉은 그 빛이 얼마나 선명했을까? 겸재 정선의 ‘안현석봉’은 그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근경에는 소악루가 보인다. ‘소악후월’은 소악루에서 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본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선유봉, 목멱산(남산), 잠두봉 등이 보인다. 소악루는 조선 시대 영조 임금 때 동복 현감을 지낸 이유가 궁산 동쪽 옛 악양루 터에 지은 누각이다. 현재 소악루는 원래 정자가 있던 자리를 찾지 못해 1994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지은 것이다. 지금도 정자에 오르면 한강과 주변 산들이 어울린 풍경을 볼 수 있다. 동쪽 멀리 여의도 빌딩 숲이 보이고, 물 건너편에 노을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노을공원 뒤로 안산 봉우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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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악루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옛 성터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크게 승리하기 전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망원정은 1424년에 세종 임금의 형인 효령대군이 지었다. 이듬해 가뭄이 심했는데, 세종이 이곳에 들렀을 때 마침 비가 내렸다고 해서 희우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망원정은 그 이후 성종 임금의 형인 월산대군이 물려받아 정자를 고쳐 지으며 붙인 이름이다. 정자 안에 ‘喜雨亭’(희우정) 현판이 있고, 정자 밖에는 ‘望遠亭’(망원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지금 건물은 1989년에 다시 지었다.
망원정에서 한강의 섬, 선유도가 보인다. 선유도에서 보면 망원정 뒤로 북한산 줄기가 늠름하게 버티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산이 품은 정자들
인왕산 자락에는 흥선 대원군의 별서였던 석파정이 있다. 1800년대 중반 김흥근이 지은 것이다. 당시에는 ‘삼계동 정사’라는 이름이었다(별서 사랑채 부근 바위에 삼계동(三溪洞)이라는 각자가 남아 있다). 훗날 흥선 대원군 소유가 되면서 대원군의 호 석파를 따 석파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석파정 별서 건물 앞 계곡에 지금도 물이 흐른다. 계곡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숲속에 정자가 있다. 인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정자 아래로 흐른다. 정자를 품고 있는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시 별서 건물 앞이다. 이번에는 별서 건물 뒤 오솔길로 접어든다. 오솔길로 올라가다가 돌아보면 600년 넘은 소나무와 별서 건물이 어깨를 나누고 있는 풍경 뒤로 백악산(북악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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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다. 원래 이곳에 조선 시대 태조 임금 때 남산 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모시는 국사당이 있었다. 나라의 제를 올리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국사당을 허물고 조선신궁을 세웠다. 조선의 성역을 파괴하고 제 나라의 성역을 쌓은 것이다. 조선신궁은 광복 이후 시민들 손으로 철거했다.
남산과 마주보는 백악산(북악산)에는 북악팔각정이 있다. 한때 남산과 함께 데이트 코스로 유명했던 곳이다. 북악팔각정 2층 난간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을 즐긴다. 그곳에서 서울의 두 얼굴을 볼 수 있다. 북악팔각정 북쪽 풍경은 북한산이 만든 거대한 병풍 같다. 북한산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보현봉, 형제봉이 서쪽부터 동쪽으로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서울 도시의 풍경이 드넓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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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참정대신을 지낸 한규설이 살았던 중구 장교동 집을 1980년에 국민대학교로 옮겨 지었다(서울시 민속자료 제7호). 현재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으로 쓰인다. 명원민속관 한쪽, 담장 밖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새로 지었다. 한규설 가옥과 상관없는, 새로 지은 정자다. 소나무와 벚나무가 연못과 정자에 그늘을 드리운다. 정자 마루에 앉아 있으면 바람 소리에 적막이 더 깊어진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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