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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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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에 치이고, 벌이도 별로" 택시자격 응시 7년새 반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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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자격시험 현장 가보니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시교통회관에서는 금요일마다 실시되는 택시운전 자격시험이 한창이었다. 이날은 192명이 응시했다. 20명 정도인 30~40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50~60대로 보였다. 시험장으로 지정된 강의실 한 곳을 가득 채웠다. 시험을 주관하는 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예전엔 강의실 2~3곳을 썼는데 많이 줄었다"며 "대부분 회사 그만두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오신 분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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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에서 열린 택시 운전 자격시험 시험장으로 응시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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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는 일자리에서 쫓겨나면 마지막으로 찾는 '최후의 생계 수단'으로 꼽혔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용 감소에도 응시자는 크게 줄었다. 1990년대에는 서울 택시시험 응시자가 연간 4만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중노동인데 벌이도 시원찮다는 소문이 나면서 2004년부터 1만명대로 급감했고, 2012년에는 1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타다' 등 승차 공유 서비스 업체들까지 등장하면서 '택시 운전해서 돈 벌기 어렵다'는 인식이 더 심해졌다. 작년엔 연간 응시자가 고작 5800명이었다. 불과 7년 만에 응시자 수가 반 토막 났다. "요즘 택시가 어렵다곤 하지만 이거 말고 마땅히 다른 생각이 안 나 일단 면허라도 따두려고 왔다"는 A씨는 "큰 준비도 안 하긴 했지만, 시험이 생각보다 어려워 두 번이나 떨어졌다"고 했다. 이날 192명 중 114명이 합격했다. 합격률이 59%에 그쳤다.

"돈 안 된다지만 다른 수 없어 시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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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11시쯤 끝났다. 서울 지리, 교통·운수 관련 법규, 안전 운행 등 80문제를 풀어서 60점(100점 만점)을 넘겨야 합격이다. 당일 오후 12시쯤 합격자 발표가 나기 때문에 시험을 마친 응시자들은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거나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예비 택시 기사들의 화제는 '타다'였다. B씨는 "호출 서비스만 제공해야 하는데 몰래 배회하면서 손님을 태우는 경우도 많다더라. 택시처럼 군다"면서 욕을 했다. C씨는 "우리는 이렇게 시험도 치고 검증을 다 받는데 타다는 등록만 하면 운전대 잡는 것 아니냐"며 "나중에 범죄 사고라도 나면 크게 말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가 되려면 1년 이상 무사고 운전 경력을 쌓아야 한다. 그 후 운전 적성 정밀 검사를 보고 적합 판정을 받아야 택시운전 자격시험을 볼 기회가 생긴다.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신원 조회 과정 거쳐 16시간 신규 채용자 교육을 거쳐 택시 회사로 들어갈 수 있다. 반면, 타다는 인력 업체를 통해 간단한 면접에 통과하면 기사로 등록할 수 있다. 타다에 등록된 기사는 1만6000명 정도고, 한 번이라도 운행을 한 사람은 4300명 정도다.

택시 운전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택시 회사들은 구인난을 겪는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이양덕 상무는 "택시 기사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서울 택시 회사는 운행률이 60% 이하다"며 "10대 중 4대는 놀고 있다는 소리"라고 했다.

"택시든 타다든 운전대 잡으면 고생"

경기의 '바로미터'라고도 불렸던 택시 기사들은 "손님이 없어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지난달 23일 새벽 1시 서울 강남구 강남역 4번 출구 인근 골목에 차를 대고 있던 택시 기사 박모(42)씨는 "10분째 손님을 못 태우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이 시간에 강남역에서 손님 못 태운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전국 영업용 택시는 2009년부터 작년까지 25만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택시 이용 건수는 40억5000만건에서 35억건으로 줄었다. 택시 1대가 하루에 44명 정도씩 태웠는데 지금은 38명밖에 태우지 못하니 수입이 줄었다. 게다가 '타다' '차차' 등 사실상 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는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위협을 느낀다고 했다. 한 택시 기사는 "손님 입장에선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좋겠지만, 택시 입장에선 사양 산업 절벽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인력 업체를 통한 파견이나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고 있는 '타다' 기사들도 걱정거리가 작지 않다. 한 '타다' 기사는 "택시보다 고된 야간 근무를 해도 시급 차이가 별로 없고, 사고라도 한 번 나면 회사에 50만원을 내야 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기사는 "택시든 타다든 운전대 잡으면 고생스럽긴 마찬가진데, 정부가 제대로 정리를 못해주니 일이 갈수록 꼬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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