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치고 외부인 통제…생석회·고압 세척기로 3∼4중 철통 방역
구제역 악몽 겪은 농장주 바깥출입 끊고 돼지와 함께 관리사 생활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구제역은 백신이라도 있지만, 돼지열병은 약이 없다니 어쩔 도리가 있나요. 그저 소독하고 또 할 뿐입니다."
지난주 북한 자강도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African Swine Fever)이 발병하면서 북한과 접경을 이루는 경기도 파주의 양돈 농가들이 비상방역에 돌입했다. 코앞까지 들이닥친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농장마다 3∼4중 방역망을 치고, 24시간 물샐틈없는 경계에 나선 것이다.
생석회 공급받는 축산농가 |
이 지역은 북한과 가깝지만, 비무장지대(DMZ) 남북 양쪽에 이중 철책이 설치돼 야생 멧돼지 이동에 의한 직접적인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자칫 감염된 사체가 임진강이나 한강, 서해 등을 통해 떠내려와 전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양돈농장도 초비상이다.
3일 오후 연합뉴스 취재팀이 찾아간 파주시 파평면 덕천리 김재문(71) 씨 농장은 입구부터 삼엄한 기운이 감돌았다.
면 소재지에서 차로 10분을 더 들어가는 외딴곳에 자리 잡은 그의 농장은 높은 산과 농경지에 둘러싸여 '요새'를 방불케 했다.
외부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상황이어서 이 길을 통해 농장에 들어가는 과정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우선 진입로에 접어들면 생석회가 '―'자로 뿌려져 허옇게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철저한 소독 |
생석회 지대를 통과하면 농장주 김씨가 출입문 앞에서 소독기를 들고 기다린다. 이곳에서 출입 차량은 바퀴와 차체 전체에 소독약을 뒤집어쓰게 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농장 안으로 들어서려면 또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손 소독기 샤워를 마친 차량은 세차장에서나 볼 수 있는 고압 분무기 앞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곳에서 고압으로 살포되는 소독약은 차량에 붙은 작은 오염물질까지 샅샅이 털어낸다.
농장에 들어선 취재진에게 김씨는 '출입자 관리대장'을 내밀며 이름과 소속, 방문시간, 방문목적, 연락처 등을 기재하게 했다.
방역을 위해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출입자 기록 |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는 "그냥 돼지와 종일 붙어 있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구제역은 백신이라도 있지만, 돼지열병은 예방법이 없지 않으냐. 종일 돼지를 돌보면서 이상 여부를 체크하는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9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그는 지난주까지 하루 2차례 하던 돈사 소독을 이번 주부터 3차례로 늘렸다. 소독이라도 흠뻑 해줘야 불안감을 덜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전 6시에 농장을 청소한 뒤 소독을 하고 나면 금방 오전 10시가 되고, 이후 2번 더 하면 날이 저문다"고 말했다.
35년째 이 일을 하면서 '돼지 박사' 소리를 듣는 전문가가 됐지만, 그는 2차례 구제역을 겪으면서 생때같은 돼지를 땅에 묻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만큼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각오가 남다르다.
그의 집은 농장에서 멀지 않은 문산읍에 있다. 그러나 비상방역이 시작된 후 그는 보름 넘게 비좁은 농장 관리사에서 돼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외부인 접촉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도 삼간다. 그는 "지난 주말 아들 내외와 손주가 찾아 왔지만, 농장 입구에서 얼굴만 보고 돌려보냈다"며 "안타깝지만, 지금은 돼지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력한 소독 |
인근에서 돼지 2천400여 마리를 키우는 이준석(47) 씨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씨는 북한의 돼지열병 발생 소식을 접한 뒤 농장 주변에 방역 울타리를 쳐 멧돼지 등 야생동물 접근을 막고, 외부 차량이나 사람들의 출입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농장 진입로 50여m 구간에 생석회를 두껍게 깔고. 고압 세척기도 추가로 설치했다.
농장을 드나드는 사료 차량이나 분뇨 수거 차량 등에 혹시 묻어 들어올 수 있는 병원균을 완벽히 제거하기 위해 세차용 세척기보다도 더 강력한 세척기를 설치한 것이다.
이씨는 "불가피하게 바깥출입을 하고 나면 내 차도 예외 없이 3중 4중의 방역을 거친다"며 "모든 바이러스는 외부에서부터 들어오기 때문에 차량은 물론, 축사 안팎을 하루 2∼3차례 소독하면서 물샐틈없이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양돈 경력 28년째인 그도 2010년 구제역으로 돼지 1천800마리를 땅에 묻은 아픈 기억이 있다.
그는 "구제역 보다 훨씬 무서운 돼지열병이 북한에 상륙한 이상 남쪽도 안전지대가 아니다"며 "우리 같은 접경지역 농장에서 촘촘한 방어망을 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n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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