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5세대(5G) 이동통신 보안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국내 통신사들의 화웨이 장비 배제를 사실상 공개 압박하고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 간 교역 규모가 큰 상황에서 화웨이 사태의 불똥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국내 기업들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국대사의 이 같은 공개 발언은 화웨이와 협력 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에 작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5일 해리스 대사는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본사에서 주한미국대사관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공동 주최한 '클라우드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5G 이동통신은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5G 네트워크상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며 "지금 내리는 (5G 보안 관련) 결정이 앞으로 수십 년간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말했듯 세계는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며 "단기적인 비용 절감은 솔깃할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를 선택하면 장기적인 리스크와 비용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해리스 대사는 신뢰받는 공급자를 선택해야 안보뿐만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중국 화웨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폼페이오 장관 발언을 인용함으로써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국내 기업에 화웨이와의 협력 중단을 사실상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주한 미국 대사가 보안 문제를 거론한 것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국내 통신사업자들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날 행사는 당초 주한미국대사관 측이 직접 주최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인터넷기업협회와 공동 주최 형식으로 바꾼 것에 대해서도 업계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인터넷기업협회에 따르면 공동 주최를 하지 않고 박성호 인기협 사무총장이 개회사만 하기로 했는데, 대사관 측에서 일방적으로 공동 주최로 바꾼 뒤 외교부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행사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한미국대사관 측에서 국내 기업들을 들러리 세워서 자신들이 의도한 목적을 관철하려 한 의도가 다분한 것 같다"고 밝혔다.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는 인기협 측 설명에 관한 질의에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지난해에도 '국경 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 주권 지키기' 토론회를 개최해 구글세 도입을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에 정면 반박해 물의를 빚었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무리수'는 지난달 28일 중국 외교부 당국자가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에 참여하지 말라고 압박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미·중 간 무역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애꿎은 한국 기업들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28일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베이징 내 중국 외교부 건물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화웨이 사태를 포함한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국 정부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며 "미국이 바라서 거기(미·중 무역전쟁)에 동참하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은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사실상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

[이동인 기자 / 오대석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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