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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20대 新양극화①] 취업과 결혼은 ‘가진자의 것’…대학교 계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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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취업난 속 빈익빈 부익부 심화…20대 울리는 ‘대학교 계급론’

-계층이동 불가능한 사회가 대학사회에도 반영

-전문가, “기성세대 문화 대학교에 그대로 침투된 것”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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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박자연ㆍ김민지 인턴기자]“그 선배 클럽만 다니더니 졸업하고 로스쿨 준비한대. 아버지가 벌써부터 아는 교수들 섭외해서 멘토링 주선해준다던데?”

일주일에 세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로스쿨를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이지연(27ㆍ가명) 씨는 가끔씩 들려오는 로스쿨 ‘낙하산들’ 소식에 기운이 빠진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학비가 부담스러워 로스쿨을 결심하기까지도 몇개월을 망설였던 지연 씨에게 ‘누군가가 졸업하고 할 게 없어 로스쿨이나 준비한다’는 얘기는 뼈아프게 들렸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왠지 돈 많은 ‘그 선배’를 이기지 못할 것 같다는 좌절감도 들었다. 그는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불성실하기로 소문난 선배가 부모의 재력을 지렛대 삼아 성공한다는 걸 생각하면 절망적”이라고 씁쓸히 말했다.

역대 최악의 청년 취업난 시대를 맞았지만, 정작 그 안에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이른바 ‘20대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는 부모의 부의 수준에 따라 직업은 ‘취미’인 상류층, 대기업이나 고시를 노리며 계층이동 꿈꾸는 중간층, 그리고 이조차도 못하는 하류층으로 나눠진 ‘신(新)계급사회’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좋은 일자리 들어가기는 점점 더 바늘구멍인 상황에서 부모의 경제력은 취업 준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부모의 배경에 따라 학생들의 취업 준비 및 결혼에 대한 생각도 확연히 달라졌다.

▶ “취업난? 20대 모두가 힘든 게 아냐”= 자소서 탈락만큼이나 학생들을 주눅들게 하는 건 취업난 속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다른 과 선배 혹은 동기의 소식이었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김모(27) 씨는 “취업과 결혼이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아닌 사람들도 분명 있다”며 “부모의 도움으로 일찌감치 취업에 성공하거나 굳이 취업을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의 소식이 알려지면 딴 세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에서 소위 말하는 금수저로 불리는 이들에게 취업은 ‘선택’이었다. 이들은 자본에 대한 걱정이 없이 스타트업을 차리거나, 학교 생활을 더 즐기고 싶으면 대학원에 진학한다. 해외생활을 즐기는 유학파도 있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31) 씨는 졸업 후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뒤 곧바로 아버지 회사를 물려 받았다. 지금까지 시험 삼아 두 번 이력서를 내봤다는 그에게 한국의 취업난은 낯선 얘기다. 그는 “아직 취업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취업이 어려운 것은 알고 있지만 준비를 안 해봐서 그런지 체감하진 못했다”고 전했다.

그 아래에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 지원으로 대기업, 중견기업, 각종 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 취업난이 두렵긴 하지만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취업이 될 것이며, 결혼은 취업을 한다면 선택의 문제라고 여기는 집단이다. 현재 공기업 준비를 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의 대학원생 윤모(29) 씨는 “부모님께 손 벌려 취업준비에 올인한지 1년정도 됐는데 노력하면 그래도 원하는 기업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결혼에 대해서도 “취업을 하면 현재 만나는 친구와 결혼할 예정”이라고 했다.

학자금을 직접 갚고 취업 준비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학생들은 취업 준비 자체가 벅차다.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취업난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쉽지 않다. 시간이 곧 경쟁력이지만 이들은 알바를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토익 점수, 각종 자격증 등 스펙 준비기간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 취업준비생 유모(27) 씨는 “취업이 늦어지면 결혼도 함께 늦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며 “사실 남자 연봉 3000만원으로 내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데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취업과 결혼 자체를 논하는 게 사치라는 이들도 있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면서 일주일에 4번 카페 알바를 하고 있는 최모(28) 씨는 9급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지만 사실상 취업을 포기한 상태다. 그는 “공무원 시험이 그나마 나이를 안 본다고 해서 쥐고는 있지만 1~2년 바짝 시험 공부만 하는 친구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결혼은 까마득한 꿈이다. 최 씨는 “학교 도서관에서 마음 편히 취업준비만 전념하는 친구들이 가장부럽다”며 “현재는 대학 동기, 선후배와도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고 털어놨다.

▶“계층이동 불가능한 사회가 대학사회에도 반영” =학생들은 이러한 대학교 문화 대해 ‘대학이 성인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는 반응이다. 취업준비생 박모(29) 씨는 “국가장학금대출 기간이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료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학생들과 전혀 관심이 없는 집단으로 나눠진다”며 “평소에도 해외여행을 몇번 어디로 갔다 왔는지, 어떤 가방을 매고 다니는지 등으로 서로의 계급에 대해 순식간에 파악한다”고 했다.

이 같은 대학사회의 계급론에 대해 졸업 이후에도 사회가 계층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Ⅴ)’ 보고서에 따르면 ‘인생에서 성공하는 데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 비율은 80.8%(‘매우 중요’ 31.7%, ‘대체로 중요’ 49.2%)로, 중요하지 않거나 보통이라고 생각한 비율(19.2%)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일생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높다’는 의견은 1.6%로 극소수였고, ‘약간 높다’도 36.6%에 그쳤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교 계급론은 기성세대 문화가 그대로 내려온 것”이라며 “건전한 자본주의 사회라면 노력으로 그런 계급 격차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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